백두대간도전

백두대간 제29구간

머투리 2023. 5. 30. 06:52
백두대간 북진종주29구간
산행일자2023년 5월 28일(일요일)
산행코스도래기재-구룡산-곰넘이재-신선봉-부소봉-태백산-사갈령-화방재
도상거리23.6km
실제거리24.33km
산행시간10시간00분(휴식시간포함)

   오늘 백두대간 28구간은 도래기재(770m), 구룡산(1345.7m), 고직령(1231m), 곰넘이재(1,079m), 부쇠봉(1,081m), 태백산장군봉(1,567m), 화방재(939m)를 잇는 구간이다.
   백두대간 29구간은 태백산에 들어선다. 경남 산청의 웅석봉에서 시작된 백두대간 북진 종주는 지리산 권과 덕유산 권, 속리산 권, 소백산 권을 거쳐 태백산 권으로 들어선다.
   이제 웅석봉에서 시작된 백두대간의 800km중에 200여 km를 남기고 있다. 대간 길을 빠짐없이 걸어왔다는 사실에 나 자신 놀랍고 대견하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매구간이 25km내외로 결코 녹녹하지 않다.
  백두대간 대원들을 태운 대간 버스는 3시에 도래기재에 도착한다. 어둠속에 내린 드림대원들은 각자 산행준비로 분주하다.기념사진을 찍고 ‘열쩡’을 외친 후 제 29구간을 시작한다. 오늘 비예보가 있고 오전에는 흐리다는 기상청 예보가 있어 걱정된다.

도래기재에서 3시7분 출발

     도래기재에서 절개지 위로 나무계단을 따라 오르니 10여분 만에 첫 번째 이정목 (현위치번호 3-1, 도래기-구룡산)이 나타난다. 이 이정목은 500m마다 세워져 있다. 현위치 번호 3-11 이정목이 나타나야 구룡산 정상에 닿게 된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길을 헤드랜턴의 불빛에 의존하여 20여분을 오르니 첫 번째 임도가 나타난다. 첫 번째 임도를 가로질러 비교적 완만한 등산로를 따라 오른다.
   새벽의 숲길은 습하지만 여기가 태백산임을 말해주는 듯 아름드리 소나무와 신갈나무가 웅장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월의 새벽은 아직 쌀쌀하지만 어느덧 옷이 땀으로 젖는다. 새벽 네시를 지나자 숲은 점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여명을 알려 주기라도 하는 듯 바람이 일렁이기 시작한다. 울창한 숲속 나무는 바람이 일렁일 때 마다 나뭇잎에 잔뜩 머금고 있던 이슬을 털어낸다.
우두둑 ~우두둑
 
   날이 밝아지자 일렁이는 바람은 나뭇잎에 묻은 이슬방울을 더욱 세차게 떨어내고 있다.  이슬은 어느덧 옷과 배낭을 흠뻑 적신다. 비옷을 꺼내 입는다. 아침과 함께 찾아온 세찬 바람은 젖은 몸을 더욱 움츠리게 한다.
 
  새벽이슬과 사투를 벌이는 사이 두 번째 임도가 나타난다. 정자가 어둠속에 우두커니 서있고 벤치는 주인이 없다. 갑자기 등산로가 넓어지고 가파른 오름이 시작된다.
  구룡산은 아홉 구비를 넘고 나서야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지만 새벽의 이슬과 고군분투하느라 오름길이 힘든 줄 모르고 헬기장으로 조성된 구룡산 정상에 올랐다. 도래기재에서 구룡산 정상까지 2시간이 걸렸다.
   구룡산 정상에 서면 하늘과 맞닿은 태백산과 함백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마루금이 뚜렷하게 시야에 들어와야 하나 안개 자욱한 구룡산은 그저 몇 십 미터 앞만 겨우 보인다.
  구룡산(九龍山,1,345m)은 지난 구간의 최고봉인 옥돌봉(옥석산, 1,242m)와 태백산(1,567m) 사이에 있는 백두대간 마루금을 잇는 산이다. 이산은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하여 구룡산 이라 하는데 용이 승천할‘때 어느 아낙이 물동이를 이고 오다가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고 뱀 봐라 하면서 꼬리를 잡아당겨 용이 떨어져 뱀이 되어 버렸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 기도하다(산림청).
  구룡산 정상을 지나자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고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이슬은 소나기가 되어 떨어진다.
  구룡산을 뒤로하고 완만한 내리막이 이어진다. 그칠 줄 모르고 계속 내리는 이슬비속에 수없는 오름과 내림을 반복하고 난후에 곰넘이재이다.

곰넘이재에서 대간길은 좌측으로 오른다


  곰넘이재는 ‘곰’은 ‘검’에서 온 말로 ‘산’을 의미하고 태백산으로 천제를 지내려가는 사람들이 이 고개를 넘어가며 행렬을 이루니 ‘산’이 있는 곳으로 넘어가는 고개라 하여 ‘곰(검신)님이’ 이라 불렀다. 즉 웅현(熊峴)은 우리말로 ‘곰재’ 혹은 ‘검재’이니 다른 말로 ‘신령(神嶺)이다.
  산령각과 움막 터가 있는 곰넘이재에서 좌측으로 보이는 신성봉을 향한 산길은 크게 반시계방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넓은 산길로 시작하더니 고도를 올려가면서 폭이 줄어들다가 평범한 산길로 바뀌어 나무의자가 있는 구릉을 지난다. 정상은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산길이 이어지다가 묘1기가 있고 산죽 길로 바뀐다. 이슬을 잔뜩 머금고 있는 산죽은 바지와 신발을 젖게 한다. 스틱으로 이슬을 털어보지만 소용이 없어 이내 포기한다.
  긴 밧줄이 있는 나무계단을 지나니 다시 된비알의 오름길 끝에 신선봉 정상이다. 짙은 안개속의 숲은 물기를 잔뜩 머금고 있다.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토스트로 허기진 배를 채운다. 대원들에게 뒤쳐질까봐 허겁지겁 토스트를 입에 우겨 넣는다.

안개속의 대간길

   여름방학이 되자 더욱 바빠졌다. 아버지를 병원에 모시고 가야 했으며, 밭을 매고 돌아서면 다시 풀이 무성해졌다. 매일 소풀을 베어야했으며, 오후에는 산에 소를 몰고 소 먹이러 가야했다. 일요일이면 소 마구간을 청소해야 했다. 이렇게 바쁜 중에도 틈만 나면 영어 단어를 외우고, 수학 방정식을 풀었다.
   
   거기다가 중간고사 이후부터 할일이 하나 더 생겼다. 은자에게 편지를 쓰는 일이다. 편지에 늘 새로운 표현이나 어귀를 찾아 쓰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쓴 편지는 어느덧 우체통이 된 탱자나무 울타리 속에 넣어 두었다. 탱자나무는 우체통이기도 하고, 우체부 아저씨이기도 했다.
  
    무더운 여름밤은 사람들을 밖으로 내몰았다. 무더위를 피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모기나 벼룩 같은 벌레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개울가에는 시원해서 늘 사람들로 가득 찼다.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젊은이들은 젊은이들끼리, 아이들은 아이들 끼리 모여서 어른들은 농사일 이야기, 젊은이들은 연애이야기, 아이들은 장난으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젊은이들은 인근 수박밭이나 참외 밭, 포도밭에 가서 수박이나 참외, 포도를 사먹기도 했다.
 
   뜨거운 여름이 끝날 것 같지 않던 어느 무더운 여름밤 은자의 여동생이 나를 찾아와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여동생이 가는 곳으로 따라 갔더니 은자가 서 있었다.
‘저녁 묵었나'.
‘그래 묵었다‘
‘··············‘
나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한 여름의 후끈한 바람과 함께 비누 냄새가 났다. 아직 한 번도 맡지 못했던 비누냄새였다.
‘오늘 포도밭에 가자’
다시 말을 이어간 것은 은자였다. 포도밭에는 청포도가 한창 익어 갈 때였다. 포도밭에 가자는 것은 청포도를 먹으러 가자는 것이다.
‘응, 누구 집 밭에?’
'요 위에 병욱이집 포도밭에 청포도 판다 카던데 거기 가자.'
     나는 은자를 따라 나섰다. 아니 앞에 섰다. 논 한가운데의 길을 따라 어두운 밤길을 걸어갔다. 길 양옆에는 개구리가 시끄럽게 울어 대었다. 우리가 걸어가면 개구리는 울음소리를 그쳤다가 우리가 지나고 나면 다시 시끄럽게 울어 대었다.
 
  어둠에 익숙해질 무렵 포도밭의 원두막에 도착했다. 포도밭 주인은 같은 마을의 친구 병욱이의 아버지였다. 친구 아버지는 무심한 듯 우리를 맞았으며 내가 은자와 같이 왔다는 것에 놀라지 않았다. 은자는 익숙한 듯 청포도 값을 흥정하고 청포도 한 소쿠리를 샀다. 우리셋은 어두컴컴한 원두막에 앉아 청포도를 실컷 먹었다.
   
  청포도 밭을 같이 갔다 오고 나서는 은자와 나는 한층 가까워진 것 같았다. 서로 무심했던 지난날들과는 달리 등하교 때 멀찌감치 보이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했다. 그땐 남학생과 여학생이 같이 다닌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나는 나를 배려하고 나를 알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에 힘이 되었다. 몰래 편지를 보내는 일은 더욱 잦아졌고 편지의 내용도 많아졌다. 탱자나무에도 가는 일이 많아졌다. 그때마다 가슴은 두근대었고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신신선봉에서 긴 내리막길을 스틱에 의지한 채 속도를 내어 보지만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다. 조망이 막힌 산길을 걷다보니 선답자들의 대간리본이 있는 구릉으로 올라선다. 우측 사면의 약간 내리막으로 조금 내려가니 안부가 나오고 차돌배기 삼거리가 나온다. 

  태백산 10km 참새골입구 6km 라고 쓰인 이정목을 보며 잠시 숨을 고른다.
  차돌배기 삼거리는 지나는 행락객들이 잠시 쉬어가는 곳으로 옛날 이 자리에 차돌이 박혀 있었다하여 차돌배기라 전하여 오고 있다 한다.
 
  언덕으로 올라서서 깃대대기 봉으로 향한다. 여전히 안개 속에 아름드리나무가 육중하게 자리 잡은 울창한 숲은 여기가 백두대간의 하늘 길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오름이 약간 완만해지고 우측에 태백산 전망대가 짙은 운무 속에 있다. 전망대의 조망사진을 보며 태백산 조망을 마음속에 그려본다.
  그리 경사가 급한지 않은 오름이 이어지다가 차돌배기 삼거리에서 1시간 20여분 만에 태백시에서 세운 깃대배기봉(1,368m)에 오른다. 이 정상석을 지나면 산림청에서 세운 정상석에 벡두대간 깃대대기봉(1,68m)라고 쓰인 정상석을 만난다.

산림청에서 세운 깃대배기봉 정상석

    ‘현 위치 번호 5-2’를 지나 ↑부쇠봉1.0km ↓청옥산 14.9km ←천재단 1.0km →가 있는 사거리를 만난다. ←천재단 1.0km 태백산으로 가는 우회길이고, ↑부쇠봉1.0km 길은 백두대간이 지나는 마루금 부쇠봉으로 지나는 길이다.
   부쇠봉가는 길을 따라 무성한 수풀로 우거진 우측 길로 접어든다. 안개속의 부쇠봉(1,549.4m) 이제 조용하던 안개속의 백두대간길이 세찬 비바람으로 바뀌었다.
   
   깃대베기봉에서 부쇠봉을 거쳐 태백산으로 가는 평평한 능선길을 신라시대부터 ‘하늘고개‘라는 뜻으로 ’천령‘이라 불렀다고 한다. 지금우리는 하늘 길을 걷고 있다.

살아천년 죽어 천년의 주목


  부쇠봉을 지나자 흙길이 돌계단으로 바뀌며, 넓은 헬기장이 나오고 사방으로 트인 넓은 구릉이 시야에 펼쳐지고 천제단의 하단에 닿는다.

천제단 하단


돌을 쌓아 만든 하단은 태백산의 천제단중 제일 낮은 곳에 있는 제단이다.
  돌길을 지나면 나무계단이 천왕단으로 이어지는데 여기가 태백산임을 알리는 듯 세찬 비바람이 몰아친다.

천왕단
태백산 정상석


  계단을 마저 오르면 마침내 천제단의 돌로 높게 쌓은 천왕단이 나오고 오른쪽에 태백산(太白山)이라 음각된 거대한 정상석이 우리를 맞아준다. 기념사진을 남기고 서둘러 장군봉으로 향한다.
  너덜의 돌길은 태백산의 영봉 장군봉(1,567m)으로 이어지는데, 정상석에는 ‘태백산 최고봉 장군봉’이라고 쓰여 있다.

장군단
장군봉 정상석


    천제단은 장군단과 천왕단과 하단으로 이루져 있다. 영봉(비로봉) 정상에 있는 천왕단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고, 장군봉에 있는 장군단은 사람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며, 영봉에서 조금 내려선 하단은 땅(자연)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이 세개의 단은 삼재사상(天地人;하늘과 땅과 사람)에 기초해 있다. 즉 하늘의 뜻을 받들고 땅(자연)을 경외 하며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겠다는 사람들의 고백이 담겨 있다.
 
   태백산은 백두산으로부터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 그리고 청옥산과 두타산을 지나며 뻗어내려온 백두대간의 맥이 크게 용트림하는 산이다. 다른 산들과 달리 태백산은 주능선 일대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평평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부드러운 능선이다. 마치 하늘과 자연과 사람의 조화로움을 상징하고 있는 것과 같다.
 
  태백산은(太白山)은 ‘크게 밝은 산’이라는 의미이다, 태백산은 매년 개천절에 태백산 천제가 봉행된다. 태백산 천제는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신라 일성왕 5년 (서기138년)10월 왕이 친히 태백산에 올랐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천제는 고려와 조선을 지나면서 유교가 크게 성행하던 조선중기이후부터는 천제를 금하였지만 민간에서 꾸준히 천제를 지내왔다,
 
  장군봉 정상에서 빗방울은 굵어지고 비바람이 세차 비옷을 꺼내 입는 사이 후미 대원들은 사라지고 없다. 오늘의 날머리 화방재까지 갈려면 서둘러야 한다. 장군봉에서 널찍한 돌과 군데군데 박힌 나무계단을 밟으며 뛴다. 미끄러운 돌계단이 어지럽게 놓여 있어 속도가 나지 않는다. 올라오던 산객들은 서둘러 길을 비켜준다. 유일사 쉼터사거리에서 쉬고 있던 대원들을 만난다.
 
  유일사 쉼터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내려서면 유일사 내려가는 길이고, 백두대간의 마루금은 직진하면 2.4km 사길령으로 이어진다. 여기부터는 내리막길을 기대 했는데 역시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오름과 내림이 계속 이어진다. 길은 좋지만 체력이 고갈되어 조금의 오르막도 사력을 다해야 한다. 네 번의 오름과 내림이 이어지고 드디어 사갈치(사길령) 산령각이 넓은 공터에 자리 잡고 있다.
 

산령각


   이 산령각은 강원도에서 경상북도 춘양으로 넘나들던 보부상들이 자신의 안전과 장사의 번창을 위해 산령각을 세우고 매년 제사를 올리던 곳이다. 보부상들이 해체된 이후에도 이곳현리마을주민들이 보부상들이 남긴 재산과 그 수익금으로 산령각계를 만들어 해마다 산령각제를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산령각 내부를 보기위해 문을 열려고 해보았으나 산령각은 열쇠로 굳게 닫혀있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마지막 힘을 쏟아 내려서니 커다란 사길령 표지석을 만난다.
 

사길령 표지석


   신라시대에는 태백산 꼭대기로 향하는 고갯길이 있어서 하늘고개길인‘천령(天嶺)이라 했는데 길이 높고 험하여 고려시대에 새로이 길을 낸 것이 새길재(사길령)이라고 한다. 대원들은 서로 격려하며 기념사진을 찍고 내리막길을 내려가 태백과 영월을 오가는 31번 국도위의 화방재로 내려선다.
 
  드디어 새벽 3시 7분에 시작된 백두대간 29구간 도래기재-화방재구간을 약 10시간의 산행 끝에 화방재에 도착한다.
 
  화방재(花房嶺)는 고개위에 조그마한 돌이 있는데 꽃같이 곱다 하여 화방재(花房嶺)라 한다.(고개 마루 부근에 진달래, 철쭉이 무성하여 화방재라고도 한다.)
 
  백두대간을 시작한지 1년 하고도 한 달, 길고도 힘들었던 백두대간 29구간의 종착지 화방령에서 마침내 백두대간의 병장 계급장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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