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도전

백두대간 제 26구간

머투리 2023. 4. 25. 14:37

 

백두대간 북진종주 26구간
산행일자 2023년 4월 23일(일요일)
산행코스 저수령-촛대봉-투구봉-시루봉-배배-흙목정상-싸리재-솔봉-묘적령-묘적봉-도솔봉-삼형재봉-죽령
도상거리 19.28km
실제거리 20.0km
산행시간 9시간 30분(휴식시간포함)

  백두대간 북진종주 7기 26구간은 저수령(850m), 촛대봉(1,080m), 투구봉(1,081m), 시루봉(1,110m), 흙목정상(1,061m), 솔봉(1,021m), 묘적령(1,020m), 묘적봉(1,148m), 도솔봉(1,314m), 삼형제봉(1,286m), 죽령(689m)으로 1,000미터가 넘는 아홉 개의 고봉들을 넘는다.
  경상복도와 충청북도의 경계를 이루며 뻗은 이 백두대간 줄기는 해발고도 1,000m가 넘는 산들이 줄지어 솟구친 곳이다. 또한 산세가 굵고 웅장해 진정한 백두대간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한적한 저수령 휴게소에 우리 백두대간 원정대를 실은 버스가 도착한 시각은 7시 30분이다.
  저수령은 단양군 대강면과 예천군 상리면을 잇는 927번 지방도로가 통과한다. 저수령은 험난한 고갯길이 워낙 높고 가팔라서 길손들의 머리가 저절로 숙여졌다는데서 유래되었다 한다.
 
  한때 번성했던 저수령 휴게소는 인근에 중앙고속도로가 뚫리고 부터 교통량이 급감하여 휴게소가 폐쇄되고 건물들이 흉물스럽게 방치되고 있다. 그러나 해마다 그란폰도(Gran Fondo) 대회(오랜 시간 라이딩을 하는 장거리 라이딩 이벤트)가 해마다 열리고 있다. 올해는 무려 2300여명의 참가자들이 103.2km 구간의 순환 코스에 레이스를 즐겼다한다.
  우리 원정대는 문대장의 구호에 맞추어 간단한 체조를 하고 7시 40분에 26차 대간을 시작한다.
 
  들머리는 경상북도에서 세운 ‘저수령’ 표석 옆의 소나무에 리본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통나무 계단이다.

워정대의 힘찬 발걸음


  낙엽송이 울창한 숲길을 따라 20여분 급경사를 치고 오르니 아직 겨울의 잠을 자고 있는 참나무가 무성한 촛대봉(1,080m)정상에 닿는다. 물 한 모금 마시고, 재킷을 벗어 배낭에 구겨 넣으며 오늘의 대간 길 체력을 가늠해본다. 몸 상태는 최상은 아니지만 최하도 아니다. 날씨는 흐리지만 시야를 가릴 만큼은 아니다.
  촛대봉에서 내려섰다 올라서니 투구봉(1,081m)이다. 갑자기 조망이 트이며 가슴이 뻥 뚫린다. 지나온 백두대간능선과 앞으로 진행할 백두대간의 능선들이 굽이굽이 줄지어 섰다.
 
  투구봉은 투구모양으로 봉우리가 솟아 있다. 투구봉 주위는 투구 꽃이 많다. 한여름의 더위가 한풀 꺾이면 투구모양을 한 투구 꽃이 지천으로 핀어난다. 투구 꽃을 볼 수 없어 아쉽지만 한 번에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사 아닌가?
     투구봉에서 1시간 30여분 만에 시루봉에 닿는다. 정상부근의 바위가 시루떡 같이 바위가 층을 이루고 있다. 시루봉을 넘자 잣나무 숲이 줄지어 우리를 반긴다.
  백두대간의 길답게 잘 정비된 등산로는 힘든 백두대간의 여정을 씻어준다. 예천군민의 아름다운 배려에 감사한다.

  

잘 정비된 대간길

시루봉과 배재, 싸리재를 지나 흙목정상에 오를 때까지 거의 숲속이다.
  흙목은 흙목정상 아래에 예천군 상리면 흙목 부락이 위치하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흙목 정상에서 조금 진행하니 거대한 송전탑이 나오고 송전탑을 지나

솔봉 너머 도솔봉이

솔봉(1,021m)에 닿는다. 솔봉에 오르니 오늘 대간 길의 최고봉 도솔봉(1,314m)이 도저히 닿을 수 없을 것 같이 저 멀리 보인다. 솔봉에서 별다른 특징이 없지만 지루하지 않는 잘 정비된 멋진 길을 내달아 묘적령에 닿는다.
  소백산 국립공원 경계에 있는 묘적령(1,015m)은 말만 고갯마루(領)였다. 바로 앞에 묘적봉(1,148m)과 솔봉(1,021m)이 없었다면 안부(산마루가 말안장처럼 움푹 들어간 부분)로 치기 어려울 정도로 고도가 높다.
 
    아카시아 나무 밑에 혼자 앉았다. 책과 노트를 꺼내어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길에는 한 무리의 학생들이 왁자지껄 지나가고 이내 적막해졌다. 이따금 종달새 소리와 뻐꾸기 소리가 날뿐 사방은 적막으로 내려앉았다. 얼마나 흘렀는지 작은 발자국소리가 커지다가 작아졌다. 흰 블라우스와 검은색 치마를 입은 여학생이 저 멀리 사라졌다. 이웃에 사는 같은 학년인 얼굴이 새까매서 깜시란 별명을 가진 은자였다. 은자가 사라진 후 책을 가방에 주섬주섬 집어넣고 일어섰다. 해는 어느덧 서산에 기울고 있었다. 분주히 논밭으로 오가던 농부들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아까 지나갔던 은자가 저 앞에서 가고 있다. 이상하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 은자는 뒤를 돌아보더니 무엇을 떨어뜨리고는 쏜살같이 뛰어 갔다. 그 순간 떨어뜨린 것이 나에게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숨죽이며 떨어뜨렸을 것으로 짐작되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 흰색의 봉투가 놓여 있었다. 나는 숨이 멎을듯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다보았다. 다행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 나를 훔쳐보기나 하는 것처럼 떨리고 불안했다. 드디어 편지가 떨어진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그러나 편지를 줍기 위해서는 허리를 굽혀야 하는데 누가 볼까봐 허리를 굽힐 수 없다. 상체를 꼿꼿이 세우고 다리만 굽혀 편지를 손가락 사이에 끼워 넣고는 다리를 펴고 걷는다. 편지를 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편지를 가방에 넣고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집에 와서도 떨리는 가슴에 편지를 뜯어보질 못했다. 방에 누가 있나 방문을 모두 열어 보았다. 사랑방에 누워계시는 아버지만 계실뿐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편지봉투 안에는 알록달록하고 향기까지 벤 편지지에 눌러서 쓴 예쁜 글자들이 적혀 있었다.
To 욱이
봄이 오는가 싶더니 연두색의 나뭇잎이 어느덧 싱그러운 초록색으로 바뀌었구나.
중학교 들어와 처음으로 보는 중간고사 잘 쳤니?
요즘 너의 창백한 얼굴을 보니 안타까워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그렇겠지. 힘내.
전번 일요일 논에서 모심기하는 것 봤어.
많이 힘들어 보였어
나도 중학교 들어와서 많이 힘들었어.
너처럼 일 도우는 것도 없는데 말이야.
학교생활이 적응이 안 되었어.
이제 봄이 가고 여름이 오면 옛날
물장구치며 놀던 때가 그리워지겠지
집안 일 도우느라 힘들겠지만 학교생활 잘해
from 은자
p.s 문제집이 필요하면 빌려 줄게
나한테 국어, 수학, 영어, 지리 문제집이 있어
 
  그리고 편지 봉투 안에는 소라가 넣어진  뿔자루로 된 팬이 들어 있었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잉크병을 책상모서리에 놓고 팬으로 잉크를 찍어 글을 썼다. 잉크가 쏟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잉크병 안에 스펀지를 넣어 사용하기도 했다. 나는 읽은 편지를 책상 서랍에 넣고 열쇠로 잠갔다.
누가 꺼내 볼까봐 몇 번이나 확인한 후 엄마가 일하시는 밭에 가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일을 했다.
 
   오늘 대간 길의 중간지점이다. 후미 대원들이 저마다 싸온 도시락을 꺼내 놓는다. 미아님은 청송의 딸답게 정구지 찌짐과 두릅, 오가피순을 한가득 싸왔다. 청정 봄나물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젓가락이 분주하다.
  푸짐한 점심을 먹고 서둘러 길을 나선다. 묘적봉이다.

묘적봉에서 도솔봉은 손에 잡힐듯 가깝게 보인다.


   묘적봉에서 바라본 도솔봉은 손을 내밀면 닿을 듯 가깝게 느껴지지만 실제로 걸어보면 1시간에 가까운 거리다.
  묘적봉에서 도솔봉사이에 숨어있는 공간을 눈치 채지 못하기 때문이다. 코앞에 보이는 도솔봉은 압도적이리만큼 웅장하나 그렇다고 보는 이의 기부터 꺾고 보는 그런 형국은 아니다.
 
   묘적봉(1,156m)을 지나니 급경사 구간이다. 조심해서 내려서니 고개를 뒤로 한껏 젖혀야 도솔봉 전망 바위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급경사구간이다.

도솔봉 오르는 급경사

도솔봉으로 오르는 급경사 구간에서 긴 계단이 나타났다. 사다리를 연상할 정도로 기울기가 급하다. 도솔봉 정상 직전은 꽤나 긴장이 필요한 암릉이다. 급경사 계단을 지나 우측으로 바위 전망바위에 오르니 대간의 능선길이 발아래 펼쳐진다.

도솔봉에서


  전망바위를 조심스럽게 내려서서 조금 진행하니 널찍한 헬기장에 첫 번째 도솔봉 정상석이 있다. 첫 번째 도솔봉 정상 석은 누군가에 의해 심하게 훼손되어 있다. 여기서 100m 쯤 더 가니 작고 아름다운 글씨체로 쓰인 두 번째 도솔봉 정상석이 우리를 반긴다. 여기서는 사방의 조망이 탁 트인다. 아스라이 먼 지나온 대간 길과 소백산 연화봉과 비로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도솔봉에 오르면 소백산 연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저 홀로 잘나지 않아서 더욱 아름다운 산 도솔봉
  도솔봉은 도솔천(兜率天)에서 이름 지어 졌다. 미륵부처님이 계신 곳을 도솔천이라 하는데 도솔천은 범어 투시다(Tusita)의 음역으로서, 의역하여 지족천(知足天)이라고 한다. 지금 스스로 족한 줄만 알면 이곳이 평화롭고 자유로운 세상임을 의미한다.
  도솔천은 우리가 도달해야할 어떤 특별한 경지가 아니다. 바로 이 순간 지족할 줄만 알면 바로 내 눈 앞에서 도솔천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고, 우리 스스로가 미륵(현재는 보살이지만 다음 세상에 부처로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 미래의 부처) 이 되는 것이다.
  도솔에 이르려면 이정도의 공은 들여야 하는 듯이 도솔봉에 올라서자 온산들이 모두 도솔봉을 중심으로 드러누웠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막힘이 없다. 소백산의 이곳이 바로 도솔천인 것이다. 즉 소백산이 부처라면 이곳 도솔천은 미륵이 되는 것이다.
  도솔봉을 지나 암봉에 이르니 죽령을 비롯해 소백산 연화봉과 비로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소백산 안에서는 소백산을 볼 수 없다. 소백산을 자세히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도솔봉이다.

도솔봉에서 바라본 소백산 연봉


   하지만 소백산 줄기는 먼 세상인양 멀게만 느껴진다.
속리산, 주흘산, 황장산, 조령산의 지나온 산줄기들이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각각이 달랐던 심장 박동과 호흡, 고통의 시간들이 떠오른다. 그러나 지금의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함(도솔천)을 나는 안다.
도솔봉에서 삼형제봉을 거쳐 죽령으로 이어지는 길은 만만치 않다. 삼형제봉과 흰봉산 삼거리로 이어지는 오름과 내림 길은 대간꾼들의 인내심을 시험하듯 끝이 없이 이어진다. 백두대간의 선답자들의 “대간 길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이 실감나게 하는 구간이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순간들을 수없이 반복하고 나서야 마지막 내림 길을 내어준다. 그렇지만 내림 길도 만만치 않다. 죽령이 코앞인데 잣나무 숲으로 길게 이어지는 길을 몇 고비를 돌아서야 비로소 죽령이다.
  

죽령


   그러나 마지막 날머리를 내려서면 그동안의 힘든 여정은 금방 잊히고 나는 다음 백두대간을 꿈꾸게 된다.

희열을 느끼는 순간
나는 아직도
존재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의식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희열이 어떤 것인지는 알고 있다. 그것은
온전하게 현재에 존재하는 느낌, 진정한
나 자신이 되기 위해 해야 하는
어떤 것을 하고 있을 때의
느낌이다.
-조셉 캠벨의≪블리스 내 인생의 신화를 찾아서≫ 중에서

 

'백두대간도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두대간 제28구간  (0) 2023.05.17
백두대간 제 27구간  (0) 2023.05.03
백두대간 제 25구간  (0) 2023.04.11
백두대간 제 24구간  (0) 2023.03.27
백두대간 제23구간  (0) 2023.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