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도전

백두대간 제 27구간

머투리 2023. 5. 3. 23:54
백두대간 북진종주27구간
산행일자2023년 4월 30일(일요일)
산행코스죽령-연화2봉-연화1봉-소백산-국망봉-고치령
도상거리24.6km
실제거리25km
산행시간10시간00분(휴식시간포함)

   소백산은 죽령 이남으로는 묘적봉(1,148m), 도솔봉(1,314m), 북으로는 제2연화봉(1,357m), 연화봉(1,383m), 제1연화봉(1,394m), 비로봉(1,439m), 국망봉(1,421m), 신선봉(1,389m)등 고산 연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백산은 지리 산과 함께 대표적인 육산이다. 바위가 많은 설악산, 북한산, 속리산등과는 산세가 확연히 다르다. 소백산은 크고 높은데도 가파르지 않고 완만하다.
   소백산은 대부분의 백두대간 줄기가 남북으로 뻗어 있는데 비해 소백은 동서로 길게 자리하고 있어 겨울에는 찬 대륙붕을, 여름에는 고온 다습한 계절풍을 온몸으로 맞아 어느 산보다 계절의 변화가 무쌍하다.
 
    소백산은 이 같은 지형적인 특성으로 사계절 바람이 많은데다 산세가 부드럽게 이어져 ‘바람의 산’, ‘여성의 산’으로 불린다.
   소백산은 국립공원 중에서도 지리산 군, 설악산 군에 이어 세 번째로 넓다. 소백산의 ‘백산‘은 ’희다‘, ’높다‘, ’거룩하다‘등의 뜻을 가지는데 소백은 여러 백산 가운데 작은 백산이라는 의미이다. 즉 큰 백산인 태백산(太白山)(1,566.7m)보다 작은 백산 이라 하여 소백산(小白山)이라 이름 지어 졌다.
 
 
    대구드림산악회 백두대간 7기 원정대를 실은 버스가 죽령에 도착한 시간은 5시 30분이다. 문대장은 분주히 산행준비에 바쁜 원정대를 재촉하여 체조를 시작한다.
하나~둘~셋~넷~ 다섯~여섯~일곱~여덟
둘~둘~셋~넷~다섯~여섯~일곱~여덟
~~~~~~
   5시 40분 죽령휴게소에서 넓은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 소백산으로 들어선다. 어제 비가 온 후 오늘 날씨를 걱정했는데 걱정한대로 바람이 세차게 분다.

웅∼웅∼웅
 
   모든 것을 날려 버릴 듯한 기세로 바람이 세차게 분다. 대원들은 몸을 겨우 가누며 운무 속으로 하나 둘 사라진다. 운무는 짙게 깔려있고 4월의 마지막 날씨답지 않게 차가운 바람이 자꾸만 옷깃을 여미게 한다.
   천문대를 오르는 시멘트 도로가 계속 이어진다. 7시 30분 소백산 천문대가 웅장한 모습으로 안개 속에 잠겨 있다. 바람은 더욱 무서운 기세로 불어온다.
   

소백산 천문대

뒤늦게 핀 진달래가 상고대와 어우러져 흰 상고대속에 붉은 꽃이 갇혀 있다. 세차게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은 나무들을 상고대로 흰 겨울옷을 입혀 놓았다.
 

상고대

   8시 10분 제1연화봉에 닿는다.
  갑자기 구름이 걷히며 부드럽고 장쾌한 소백산 능선이 나타났다가 다시 구름 속에 갇혀버린다. 죽령 넘어 도솔봉으로 이어지는 대간 줄기가 마치 살아 있는 듯 구름 속에서 굽이친다.
    여전히 바람은 세차게 불어오지만 구름 속에서 가끔 내비치는 소백산의 부드러운 능선은 마치 선경인 듯하다.

소백의 부드러운 능선
4월 마지막날 소백산의 상고대

    비록 봄은 일러 천상의 화원은 볼 수 없으나 구름의 장막 속에서 나타나는 장쾌한 소백의 능선은 봄을 연주하는 왈츠 같다.
변화무상한 소백의 경치를 바라보며 걸으니 산행의 고단함도 잊는다.

비로봉 정상석

     드디어 소백산의 최고봉 비로봉에 닿는다.
비로봉은 비로자나에서 유래되었다. 비로자나는 범어 바이로차나(Vairocana)를 음역한 것으로 ‘빛이 온 세계 어느 곳에나 두루 비친다’ 뜻으로 석가모니를 뜻한다.
  연화장세계는 비로자나불이 계신 곳으로 공덕무량(功德無量), 광대장엄(廣大莊嚴)의 세계이다. 미륵보살은 도솔천에서 5억7천6백만년을 보낸 뒤 지상에 내려와 연화장에서 성불했다.
 
소백산의 도솔봉과 연화봉, 비로봉은 도솔봉에서 긴 시간을 보내다가 부처(비로자나)로 탄생하여 연화봉에 계신다는 데서 이름 지어 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도솔봉에서 이곳 비로봉까지의 긴 여정을 말해주는 지도 모른다.

   부처를 뜻하는 비로자나에서 유래된 비로봉은 그 산의 최고봉이다. 비로봉은 금강산의 비로봉과 이곳 소백산의 비로봉, 팔공산의 비로봉, 속리산의 비로봉, 묘향산의 비로봉, 치악산의 비로봉이 있는데 모두 그 산의 최고봉이다.

   도솔봉, 연화봉,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부처님의 길(가르침)을 따라서 일까? 비로자나불 즉 비로봉을 지나자 바람은 한결 부드러워 졌다.

국망봉 정상석


    10시 20분 국망봉에 닿는다. 국망봉은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고려에 투항하자 마의태자(麻衣太子)는 은거지를 찾아 금강산으로 가는 도중 이곳 국망봉에서 경주를 바라보며 망국의 눈물을 흘렸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국망봉은 경기도 포천에도 있다. 포천의 국망봉은 궁예가 왕건에게 쫒겨나 도망가던 궁예가 이 산에 올라 자신의 도읍지 철원 땅을 바라보며 한숨과 장탄식을 연발 했다는 전설이 있다.
   바람을 막아주는 국망봉 자락에 자리를 잡아 점심을 먹는다. 연화봉과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의 감동을 안고 국망봉을 나선다.
    
    세차게 불던 차가운 바람은 이제 따뜻한 바람으로 바뀌어 오후의 나른함으로 다가온다. 국망봉에서 고치령에서 11km의 긴 여정에 후미를 기다리며 나무 데크 위에 누웠다. 백두대간 종주의 꿈을 안고 40구간의 백두대간을 시작한지 벌써 1년 13구간을 남겨 놓았다.

   땀으로 범벅이 된 옷이 온몸을 칭칭 감던 무더위속의 백두대간, 물을 잔뜩 머금은 풀섶에 젖은 등산화를 신고 걷던 대간길, 풀숲의 벌집을 건드려 달겨들던 땡벌에 속수무책으로 쏘이며 대간을 이어갈지를 갈등하던 지난 대간길, 살을 애는 듯한 추위와 맞서며 핫팩에 손을 녹이며 걷던 백두대간의 긴 여정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천 길 낭떠러지 암벽에 나무뿌리를 잡고 겨우 올라서면 발아래 펼쳐지는 백두대간의 장엄한 능선들, 바위위에 걸려있는 낙락장송(落落長松), 구름 속에서 꿈틀대는 백두대간의 장엄한 능선들을 바라보며 내가 백두대간을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의 단속을 피해 잠시 맛보는 꿀맛 같은 휴식은 대간길의 피로를 씻어준다.


    편지를 받은 후부터 나에게는 또 하나 고민거리가 생겼다. 답장을 하는 문제였다. 답장 편지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이다. 우편으로 부치면 은자의 부모님이 먼저 편지를 받아보게 될 것이다. 그럼 우리 집에서도 알게 될 것이고, 아버지는 불호령을 내릴 것이다.

  그리고 며칠이 흘렀다. 그동안 난 이런 문제로 고민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밤낮없이 고민이 되었다. 그 여자아이 집은 내방에서 문을 열고 서서 보면 담 너머에 밭이 있고, 밭을 지나면 탱자나무 울타리가 길게 늘어서 있다. 탱자나무는 길을 따라 길게 심어져 있고 길옆에 은자의 집이 있었다. 내방에서 옆문을 열고 내다보면 탱자나무 사이 길로 학교 가는 은자를 볼 수 있었다. 등하교 길에는 다른 아이들 눈에 띌까봐 건네 줄 수가 없고, 동네에서는 어른들의 시선이 두려웠다.

   그렇게 5월이 가고 6월이 왔다. 집에는 농사일로 더욱더 바빴다. 보리타작을 할 때는 밤늦도록 호야불을 켜 놓고 일을 했다. 아침이면 학교에 갈 준비로 다른 일을 하지 않으니 비교적 여유가 있는 편이다. 편지를 받고 부터 방문너머 은자의 집을 쳐다보는 일이 잦아 졌다.

  나의 고민은 해결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답장이 늦어지면 안 된다. 난생처음 받아본 편지가 아니던가. 은자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다. 편지를 부치는 방법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이렇게 답장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었지만 이제 편지를 쓰는 일로 고민이 되었다.

  어떤 말로 이어갈지 어떤 단어로 시작할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겨우 몇 자 적고나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쓴 글씨체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쓴 편지지를 찢어 책상서랍에 우겨 넣었다. 이렇게 찢은 종이가 책상서랍을 가득 채우도록 편지를 썼지만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온갖 책을 다 뒤지며 좋은 명언들을 찾아보았지만 내가 원하는 글을 찾을 수가 없었다.

To 은자
봄인가 했더니 어느덧 여름의 문턱이네
편지와 선물 잘 받았어 고마워
나를 걱정해줘서 너무 고마웠어
어린왕자는 여러 별을 방문하고서야
내가 키우던 장미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고 했어
우린 서로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고 있어
아무쪼록 공부 열심히 해
from 욱이
p.s 기말고사 시험칠 때 문제집 빌려줘

  겨우 몇 줄를 썼다. 여전히 편지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더 이상 쓸 편지지가 없었다.
   편지봉투에 편지를 접어 넣고 밥풀로 밀봉한 후 책상서랍 깊숙이 숨겨 뒀다. 아침 등교하기 전에 탱자나무 너머 그 여자아이의 집을 바라보고 나서야 집을 나섰다. 며칠이 지나도록 편지는 여전히 부치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나는 방문너머 은자의 집을 쳐다보고 있었다. 교복을 입은 은자는 어김없이 집을 나와 탱자나무 울타리 옆을 따라 걷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은자의 단발머리가 찰랑거렸다. 순간 은자는 내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휙 돌리는 것이 보였다. 순간 멈칫 고개를 낮추어 담 아래로 몸을 숨겼다. 한참 지나서 고개를 들었다. 이게 웬일인가 은자는 아직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순간 은자와 눈이 마주쳤다. 예상 못한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나는 고개를 낮추어 몸을 숨길 수 없었다. 그러자 은자는 뭔가를 탱자나무 속에 넣어두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그 순간 뭔가 나에게 전달할 물건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책가방을 챙겨들고 탱자나무 울타리로 달려갔다. 탱자나무속에는 분홍색 편지봉투가 걸려 있었다.
   얼른 편지봉투를 가방 안에 넣었다. 학교에 가서도 편지는 꺼내 읽지 못했다. 가방 안에 들어 있는 편지가 하루 종일 생각났다.
저녁이 되어 내방에 들어와서야 편지를 꺼내 읽을 수 있었다.

  To 욱이
그동안 잘 지냈니?
난 중간고사를 망쳤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 모르겠어
아직 중학교 생활이 적응이 안 되어 힘들어
오빠가 많이 도와주지만 공부가 생각대로 잘 되지 않아
너는 성적이 좋게 나왔다고 국이가 말하던데
계속 열심히 해 나도 노력할게
from 은자
   
    이튿날 아침이 되었다. 나는 아침 일찍 내가 쓴 편지를 들고 집을 나와 탱자나무 울타리로 향했다. 탱자나무속에는 탱자나무 가지가 빼곡했다. 나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다행히 아무도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탱자나무 속에 편지를 얼른 넣어두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걸어갔다. 이날은 하루 종일 탱자나무속의 편지가 어떻게 될까봐 조마조마 했다.
   
    학교를 마치고 탱자나무 울타리로 가보았다. 그 속에는 내가 넣어둔 편지봉투가 없었다. 신기하게도 은자는 나의 고민을 꿰뚫고 있는 듯 했다. 편지를 부치지 못해 고민하는 나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듯하였다.
 



고치령


    어느덧 고치령에 닿는다.
   고치령은 단종 복위운동을 하던 사람들의 한이 서려 있는 곳이다. 고치령에는 길 양쪽으로 장승이 세워져 있고 길 오른쪽에 산령각(山靈閣)이 있다.
   

산령각 내부


   이곳 고치령은 바로 단종 복위운동을 벌이던 사람들이 뜻을 세우고 수시로 넘나들던 곳이라고 한다. 수양대군이 단종을 유배 보내고 왕권을 찬탈하자, 금성대군은 사육신과 함께 단종 복위를 계획하다가 영주 순흥으로 유배되었다.
   순흥에 유배된 후에도 금성대군은 순흥도호부사 이보흠의 도움을 받아 단종 복위운동을 계속한다. 금성대군은 이보흠으로 하여금 고치령을 넘어 영월로 유배된 단종을 찾아가 자신들의 뜻을 알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역모사실이 밝혀져 이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고, 순흥도호부도 쇠락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이후 영월 사람들은 원통하게 죽은 단종이 태백산 산신령이 됐다고 믿게 되었고, 영주사람들은 금성대군이 소백산 산신령이 되었다고 믿게 되었다. 영주사람들은 소백산 줄기와 태백산 줄기가 이어진 고개인 고치령에 산령각을 세우고 태백산의 산신령이 된 단종과 소백산의 산신령이 된 금성대군을 모시고 있다.
    좌우 기둥에 내려쓴 글에는
차산국내지령시성(此山局內至靈至聖)
만덕고승성개한적(萬德高勝性皆閒寂)
이산의 영역 안이 모두 지극하게 신령스럽고 성스러웠으면 한다.
수만 가지 덕이 높고 번성해서 모든 사람의 본성이 여유로우면서 고요하기를 바란다.
   고치령 산령각에 소백과 태백 사이의 양백지간(兩白之間)에 산신각을 짓고 태백산 산신령이 된 단종과 소백산 산신령이 된 금성대군을 모시고 정월 열 나흗날 산신제를 지내 그들의 넋을 달래고 모든 사람들의 안녕과 평안을 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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