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도전

백두대간 제18구간

머투리 2022. 12. 26. 09:59
백두대간 북진종주 18구간
산행일자 2022년 12월 25일(일요일)
산행코스 화령재-산불감시초소-봉황산-비재-암릉-못재-갈령삼거리-형재봉-피앗재-만수동만수산장
도상거리 15.36km
실제보은방향으로 300m거리 13.6km
산행시간 ( 8시간 0분)휴식시간포함

오늘 대간길은 상주 화서면 화령재에서 봉황산(740.8m), 비재, 못재, 갈령삼거리,형제봉9829m), 피앗재-접속구간 만수계곡까지 15.36km이다.
새벽에 집에서 나설 때 온도가 영하13도 였다. 며칠째 한파주의보가 내려 집 앞 개울은 꽁꽁 언 지도 오래다. 오늘 대간길은 매서운 추위 때문에 만만치 않을 것이다. 오늘 대간길을 대비해서 그동안 목토시, 핫팩, 손토시, 등산내의등을 마련했다. 옛날에 사용했던 6발 아이젠은 아무래도 발에 무리가 올 것 같아 요즘 트랜드인 체인 아이젠으로 새로 구입했다. 요즘은 체인아이젠이 대세다. 단단히 준비는 했지만 빠진 것이 없는지 염려가 된다.
지난번 대간길을 마감했던 화령재에 대간 버스가 도착한 시간은 7시 10분이다.
화령재는 경북상주와 충북 보은, 청주를 잇는 고갯마루이며 고려 때 이곳을 관할하던 화령현의 지명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버스에서 내리니 온통 새하얀 눈이 쌓여 있다. 한파주의보가 내린 날씨답게 한기가 몸을 파고든다. 대장이 아이젠을 착용하라고 외친다. 서둘러 아이젠을 착용한다. 대원들은 아이젠을 비롯하여 보온장구를 챙기느라 분주하다. 문대장은 체조에 참여하라고 외치고 있지만 아이젠착용이 먼저다. 문대장은 우리와 같이 내렸는데 이미 보온장구들을 착용하고 체조구령을 외치고 있다. 체조가 거의 끝 날 때 겨우 체조에 참여할 수 있었다.
단체사진을 찍으면서도 겨울산행이 오랜만이라 오늘 대간길이 걱정된다. 문대장의 출발 구령이 떨어지자 아침의 여명속으로 선두가 사라진다.
충북보은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화령재 버스 승강장을 지나 삼거리에서 들머리로 진입한다. 그다지 세지 않는 바람이지만 영하의 바람은 매섭게 손과 목과 얼굴을 파고든다. 모자와 목토시, 손토시까지 여며보지만 손끝은 아리고 얼굴과 귀는 추위에 따갑다. 추위를 걱정하면서 걷기를 1시간여 봉황산 산불감시초소에 닿는다. 산불감시 초소답게 사방이 훤하게 조망되는 곳이다.

산불 감시초소

손가락은 아리지만 몸은 땀이 난다. 재킷안의 패딩을 벗는다. 겨울산행은 추우면 입고 더우면 벗어야한다고 문대장이 말하지 않았던가. 잠잠해진 바람탓인지 이제 손과 귀는 더 이상 시리지 않다. 대원들도 이제야 여유를 찾는 모습이다. 대원들은 눈밭에 눕기도 하고, 뒹굴면서 즐거워한다. 건조한 12월의 눈은 물기가 적어 옷에 묻어도 털면 깨끗이 털린다. 모두들 동심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마음마저 늙을 수는 결코 없다.

9시 20분 봉황산(740.8m)에 닿는다. 정상이 봉황의 머리를 빼어 올리고 양 날개를 펼친 봉황의 모습과 같다고 해서 봉황산이라 이름 붙어진 산이다. 또한 봉황산은 1300여 년 전 봉황새가 날아들어 30여년을 살았다는 전설이 있다.

봉황산 정상은 진주의 모 산악회의 백두대간 대원들이 점령하여 사진 찍기에 바쁘다. 한참을 기다려 우리 대간대원들이 정상을 차지한다. BAC 인증을 하고 봉황산을 내려온다. 가파른 급경사 구간이다. 밧줄을 잡기도 하고 밧줄이 없는 구간은 나무뿌리나 나무 가지를 잡고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나무뿌리와 나무 가지도 우리에게는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밟히고 긁혔지만 나무는 나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가?
갑자기 매서운 바람이 불어 손과 얼굴이 시리다. 산불감시 초소에서 봉황산을 오를 때는 손과 얼굴이 시리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봉황산 내리막길에 갑자기 차가운 바람이 분다. 서둘러 핫팩을 꺼내 손에 쥐어 보지만 여전히 손이 시리다. 등산 스틱도 잡아야하고 핫팩으로 손도 녹여야 한다. 추위에 손도 여미고 얼굴과 귀를 여며 보지만 여전히 시리고 아프다. 미끄러운 급경사 구간에서 바라보면 백두대간의 마루금이 시원하게 조망되지만 위험한 내리막길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 암릉구간을 지나 완만한 오름이 이어지다가 낙엽송 조림지를 지나고 나무계단을 지나 비재(비조령)에 닿는다. 비재 이정표는 대간길에서 50여m 떨어져 있다. 11시 비재의 나무 데크에서 점심을 먹는다. 저마다 정성들여 싸온 도시락과 라면을 끓여 점심을 먹는다. 찬바람이 매섭다. 서둘러 옷을 껴입고 출발한다.

비재에서 점심식사
눈으로 덮힌 대간길

화령재에서 봉황산을 거쳐 이곳 비조령까지 8km, 오늘 산행의 절반을 지나는 지점이다.
이곳 비조령에서 형제봉(832m)까지는 고도를 약 500m의 고도를 높여야 한다. 봉황산을 넘으면서 기력을 소모해 힘이 부치기 시작한다. 형제봉으로 오르는 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의 반복된다. 쥐가 내리는 다리를 조심스럽게 달래며 능선에 오르자 좌측으로 멀리 구병산이 보이기 시작하고, 1시 방향에 감투봉과 대궐터산이 보인다. 대궐터산은 후삼국 통일을 꿈꿨던 견훤의 혼이 서려 있는 산이다. 상주에서 후백제를 일으킨 견훤은 이 산에 웅거하면서 성을 쌓고 대궐을 지었으며, 기슭에는 견훤의 신위를 모신 견훤사당이 있다고 한다. 그 아래 억시기 마을이 훤히 보인다. 암릉 구간을 지나 억시기 마을 갈림길을 지나 못재에 도착한다. 못재는 후백제를 세운 견훤에 얽힌 전설이 있는 곳이다. 못재를 설명한 간판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상주에서 후백제를 일으킨 견훤은 지방을 장악해 갔다. 이때 보은군의 호족인 황충장군과 견훤은 세력 다툼을 하며 거의 매일 싸움을 벌였다. 하지만 싸움을 벌인 족족 황충은 패하고 말았다. 이에 견훤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캐기 위해 부하를 시켜 미행했다. 황충의 부하는 견훤이 못재에서 목욕을 하면 힘이 난다는 것을 알아내 이 사실을 황충에게 알렸다. 황충은 견훤이 지렁이의 자손임을 알고 소금 300가마를 못재에 풀었다. 그러자 견훤의 힘이 사라졌고, 마침내 황충이 승리했다고 한다.≫

견훤이 지렁이의 자식임을 삼국유사에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옛날에 한 부자가 광주(光州)(지금의 상주)의 북촌에 살았다. 딸이 있었는데 자태와 용모가 단정했다. 딸이 아버지께 말하기를 ‘매번 자줏빛 옷을 입은 남자가 침실에 와서 관계를 하고 갑니다.’라고 하자, 아버지가 말하기를 ‘긴 실을 바늘에 꿰어 그 남자의 옷에 꽂아 두어라’고 하니 그대로 따랐다. 날이 밝자 실을 따라 북쪽 담 밑에 이르니 바늘이 큰 지렁이의 허리에 꽂혀 있었다. 이로 인해 딸은 아이를 배어 사내 아이를 낳았는데 15세가 되자 스스로 견훤(甄萱)이라 일컬었다.≫
이 설화와 비슷한 설화는 고사기(古事記)와 삼국사기에도 있다.

견훤의 어머니를 임신시킨 지렁이가 살았다는 금하굴은 못재에서 상당히 떨어진 문경시 가은읍 갈전리에 있다.

견훤의 아버지가 살았다는 금하굴에 얽힌 이야기는 견훤의 탄생설화이다. 본래 왕조의 탄생설화가 신성한 동물과 연관되어 나타나는 것에 비해, 특이하게 견훤은 지렁이의 자손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는 견훤이 그 시대의 영웅이었지만 결국 패배자 였다는 사실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견훤은 후백제를 세운 후 신라를 침공하여 포석정에서 경애왕을 살해했으며, 신라를 도우러 갔던 왕건과 벌인 공산(지금의 팔공산)전투에서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에게 대승하였다. 견훤의 군대에 포위당한 왕건은 왕건으로 변장하여 적진에 투항하여 목이 잘린 신숭겸 장군의 희생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대구 팔공산은 위왕대사(爲王代死:왕을 대신해서 죽음)신숭겸장군을 비롯하여 이곳에서 전사한 8명의 고려장군을 기리기 위해서 공산(公山)에 8(八)자를 넣어 팔공산(八公山)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이후 세력을 떨치던 견훤은 자신의 아들 신검에게 쿠데타로 왕위를 빼앗기고, 고려 왕건에게 투항하여 자신이 세운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아들들은 고려군에 처형되었다. 이후 견훤은 극도의 고뇌와 우울감에 휩싸여 등창이 생겨 황산(지금의 논산)의 어느 절에서 사망하였다고 한다.
견훤의 무덤은 논산훈련소에서 서쪽으로 2km떨어진 금곡리의 야트막한 산 정상에 묻혀있다. 시간이 나면 견훤의 출생설화가 있는 문경시 가은읍 갈전리와 무덤이 있는 논산의 금곡리에 가볼 일이다.

못재를 지나니 추위는 한결 누그러졌다. 몸과 마음은 여유가 생겼다. 갈령삼거리에서 대원들은 잠시 휴식을 취하고 형제봉의 마지막 오름 구간을 굵고 든든한 밧줄을 잡고 오른다.
든든한 밧줄을 설치하신 소중한 분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한다.

이월초하루에는 줄다리기를 했는데 줄은 길이가 30m 정도이고 몸줄은 여러 가닥 줄을 새끼줄로 엮어 구부려서 고리모양의 줄 머리를 만든다. 몸줄에서 곁 줄을 늘어뜨려 양쪽에 가지줄을 만들었다. 이 줄을 만들기 위해서 정월 대보름날 집집마다 지신밟기를 하고 볏 집을 걷는다. 걷은 볏짚으로 새끼를 꼬고 마을 청년 여럿이 새끼줄을 위에 걸어놓고 번갈아 가면서 새끼줄 사이를 오가면서 줄을 만들고 다시 줄 여러 개를 걸어놓고 그 사이를 청년 세 명이 오가면서 몸통 줄을 만들어 줄을 완성한다. 줄을 옮길 때는 청년 열댓이 둘러매어야 되는데 어김없이 풍물패가 풍물을 울리며 앞장서고 줄을 둘러맨 장정들이 뒤따르며 어깨춤을 춘다.
마을 앞길에 길게 줄을 놓고 마을 청년이 뒷산에 가서 어른 팔뚝만한 나무를 베어 만든 고를 줄 중앙에 꽂으면 줄다리기 준비가 끝난다.
날이 어둑해지면 저마다 호야 불을 들고 줄 다리기를 하기 위해 동구 앞을 나온다. 마을 사람 백여 명이 윗덤, 아랫덤(동네 한가운데를 가르는 길을 중심으로 위쪽, 아래쪽)으로 나누어 줄다리기를 한다. 줄을 사이에 두고 수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사람의 숫자가 어디가 많은지 적은지는 따지지 않았다. 줄을 당기기 위해서 나온 모든 사람은 자기가 속한 윗덤이나 아랫덤 편으로 가서 줄을 잡고 신호가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시끄럽던 사람들의 소리가 잠잠해지고 힘찬 징소리를 신호로 줄을 당긴다.
영차~영차~
줄이 끌려가면 신호에 따라 일제히 줄에 올라타서 상대가 힘이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또다시 신호에 의해서 줄을 잡고 당긴다.
영~차 영~차
윗덤 사람들과 아랫덤 사람들은 있는힘을 다해서 줄을 당긴다. 승부는 쉽게 나지 않는다.
한동안 팽팽하던 줄은 이월 초하루 밤의 어둠이 내려앉고 서로가 구분을 못할 정도로 어둑해졌을 때이다. 저 멀리서 고함소리와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줄은 순식간에 한쪽으로 끌려가는 것이다.
우두둑 우두두둑 우두두두둑
끌려갈 때는 속수무책으로 끌려가서 마을 아래쪽 당수나무 끝에 다다르면 아랫덤의 승리가 되는 것이다. 어떤 해는 아랫덤이 이기면 풍년이 든다든지 윗덤이 이기면 풍년이 든다든지 하는 예언들이 줄다리기 몇일 전부터 유포되는데 풍년, 흉년에 상관없이 서로 자기편이 이기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 이기면 줄 전체를 이긴 편에서 가지는데 줄을 끊어 지붕위에 올리는 특권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끊어온 줄을 지붕위에 올려놓으면 아들이 귀한 집은 아들을 낳고, 우환이 있는 집은 우환이 없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보면 진편 집의 지붕에도 어김없이 줄이 올려져있었다.

줄다리기가 끝나면 동네 청년들은 또 다른 행사로 가슴이 설렌다.
청년들은 나이에 따라 끼리끼리 흩어지는데 남녀 구분이 없었다.
한집에 모인 청년들은 워낙 수가 많아 윷놀이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편을 갈라 윷놀이를 하는데 지는 팀은 집에서 쌀을 가져 왔다. 모아진 쌀은 동네 점방에서 국수와 바꾸어 와서 잔치국수를 끊이는 것이다. 국수를 끓이는 것은 여자들의 몫이었다. 윷놀이가 끝나면 노래를 부르거나 끼리끼리 이야기 하며 밤새도록 놀았다. 또한 집에서 몰래 가져온 막걸리를 취하도록 마시기도 했다. 처녀 총각들은 어른들이 허락한 일 년에 몇 안 되는 놀이를 십분 활용하였다.

오른쪽 형제봉 정상석이 있는 바위로 오르니 사방이 탁 트여 있다. 멀리 속리산 천황봉과 투구봉, 대궐터산이 조망된다. 형제봉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형제봉을 지나 내리막길은 밧줄이 있는 암릉구간이다. 대원들과 서로 소통하며 내리막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오니 완만한 내리막과 완만한 오름을 오르니 피앗재에 닿는다. 피앗재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면 만수계곡이다. 이곳에서 피앗재 산장까지는 2km이다. 눈길이지만 편안한 내리막길을 걸어 만수동 마을회관을 지나 오늘의 종착지 피앗재 산장에 닿는다. 문대장이 청도에서 공수해온 한재미나리에 삼겹살 파티, 뜨거운 국물이 일품인 떡국으로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 한다.

피앗재 삼거리
피앗재 산장
피앗재 산장 장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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