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도전

백두대간 제17구간

머투리 2022. 12. 12. 22:05
백두대간 북진종주 17구간
산행일자 2022년 12월 11일(일요일)
산행코스 지기재-신의터재-무지개산-윤지미산-화령재
도상거리 15.65km
실제거리 16.8km
산행시간 ( 6시간 15분)휴식포함

  제17차 대간길은 지기재(260m)-신의터재(280m)-무지개산-윤지미산(538m)-화령재 이다. 오늘 대간 길은 중화지구대 마지막 구간이다. 무지개 산은 대간길에서 200여 미터 벗어나 있다.
추워질 거라는 예보와 달리 날씨는 좋아 보인다. 문대장의 힘찬 구령과 함께 간단한 체조를 한 후 7시 15분 17차 대간길을 시작한다. 간단한 체조이지만 안전 산행을 위해서 정말 중요하다. 체조는 신체가 등산이라는 본 운동의 큰 자극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도록 자극에 순응하는 시간을 주기 위해서다.
  겨울 날씨 답지 않게 포근하다. 17차례 대간을 함께 해온 식구들은 모두 여유로워 보인다. 등로는 왼쪽으로 크게 꺾이면서 아침 여명은 왼쪽에서 밝아온다. 힘찬 기운을 받으면서 산행을 이어간다.

힘차게 솟는 일출

신의터재에 닿는다.
신의터재는 “백두대간 신의터재“란 큰 표석(산림청,2010)과 작은 ”신의터재“(상주시,1996)표석이 정자가 있는 공원 내에 있으며, 도로 건너에 ”신의티“(화동면산악회,2009)란 조그만 표석이 따로 조성되어 있다. 또한 ”지명 혼용에 따른 설명문”이 표지판에 적혀 있다. 표지판에는 “신의터재는 임진왜란 이전 신은현(新恩峴)이라 불렸던 고개로 임진왜란 때 최초의 의병장이었던 김준신(金俊臣)이 의병을 모아 큰 공을 세우고 임진년 순절한 후부터 신의터재라 불렸으며 ”지방의 관리나 귀양중인 옛 벼슬아치들이 나라님(御)으로 부터 소식이(義信)이 오기를 기다리던 고개였다는 사연이 전해지는 고개”라면서 이어 “그러나 일제 강점기 때 민족정기를 말살한다고 "어신재”로 개명되었으나 광복 50주년을 맞아 옛 이름을 되찾은 사연 많은 고개“라고 적혀 있다. 이밖에도 공적비나 전적비 들이 무분별하게 세워져 있다.


  상주시 화동면 홈페이지에는 신의터재의 유래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어산리와 이소리 사이에 있는 재. 백두대간에 있다. 임진왜란 때에 김준신 의사와 신의(信義)있는 충신열사들이 왜적과 맞서 싸우다가 이곳에서 많은 항일의병이 순국했다하여 신의(信義)터재라 한다. 심방과 이소리 사이의 고갯길이다. 어산리 장자발에서 이소리로 넘어간다.≫ 라고 소개하고 있다.
정자에는 新義峙停(신의치정)이라는 현판이 써져 있는데 유래와 한자 뜻이 맞지 않다.
김준신의사와 신의(信義)있는 충신열사들이 왜적과 맞서 싸우다가 이곳에서 많은 항일의병이 순절했다하여 신의(信義)터재라 한다는 상주시 화동면 홈페이지의 설명이 맞다.
  또 다른 표지판에는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이다“라고 적혀 있다. 백두대간의 등줄기가 백두대간이니 당연히 남쪽 능선으로 떨어진 빗줄기는 낙동강으로 흘러가고, 북쪽으로 떨어진 빗줄기는 금강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분수령은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즉 “산은 스스로 물을 가른다” 는 뜻이다. 즉 백두대간은 민족 성산 백두산에서 남한 내륙의 최고봉인 지리산까지 강이나 계곡을 건너지 않고 이어진 분수령의 연속된 산줄기인 것이다. 백두대간을 탄다는 것은 분수령을 탄다는 것이다.
지난 16구간은 지명이나 거리와 소요시간은 나와 있지 않고 “백두대간 길”이라는 표지판만 있었다면 이번 17구간은 지명과 거리, 시간까지 친절하게 표시되어 있다.
신의터재를 뒤로하고 편안하고 부드러운 대간길을 걷는 것은 행복하다. 대간길 양 옆으로 농장과 비닐하우스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몇 번, 9시 50분 무지개산에 닿는다. 무지개산(441.1m)은 백두대간마루금에서 살짝 비켜있는(200m) 육산이다. 야트막하면서 빼어난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무지개만큼이나 우리에게 친근감을 주는 그러한 산이다. 무지개산은 산의 남쪽 골짜기에 있는 무지개 폭포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무지개 폭포는 선녀들이 하강하여 목욕을 하며 놀던 곳이라 한다. 선녀들이 내려 올 때는 이 폭포에서 무지개가 생겨 하늘로 뻗치면 그 무지개를 타고 선녀가 내려온다고 한다. 이름이 아름다운 무지개 산 아래에서 점심을 먹는다. 정성들여 사온 산해진미들을 꺼내 서로 권하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이제 우리 드림 7기들은 서로 꽃이 되고 꽃이 되어 준다.

  정월대보름날 해가 중천에 떠오르면 당산제를 지낸다. 당산제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꽹과리이다. 꽹과리는 언제나 아버지가 치셨다. 어깨를 들썩이며 꽹과리를 치시는 모습은 지금까지도 기억이 생생하다. 상쇠를 두드리는 것은 어느 누구도 아버지를 따를 사람이 없었다.

꽹과리가 갠~지 갠~지 갠지~개갱 하면 덩달아

장구는 덩~따 쿵따 쿵~따 쿵따,

북은 쿵~쿵~쿵~쿵

징은 징~~~~징~~~~

하고 울리면 동네사람들이 모여들고 아이들도 덩달아 신이 난다. 구경꾼들은 어느덧 풍물패와 한 무리가 되어 움직이며 어깨춤을 춘다.

꽹과리가 “다다다 다다다 다다다“ 하면 덩달아 징은 ”징~징~“소리가 울리고 북소리가 ”쿵~쿵~쿵~쿵“하며 가슴을 울리면 구경꾼들은 침을 꼴깍 삼킨다.

어느덧 꽹과리는 “당~딱다 당 ~딱다” 하며 소리가 끊어질듯 하다가 징~∼~~하는 징소리는 저 멀리 산속에서 새 생명이 꿈틀대는 듯이 울려온다. “쿵쿵”하는 북소리는 어린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풍물패는 마을 사람들과 한 덩어리가 되어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꿈틀댄다.

풍물패는 꽹과리를 선두로 뒷산 어귀에 있는 당산나무로 향한다. 마을 사람들은 어깨춤을 추며 농악대를 따라 간다. 놀이에 참여하지 못한 마을 처녀와 젊은 새댁은 담장에서 길게 목을 빼어 농악대가 이동하는 것을 구경한다. 동네에는 할배 당산나무와 할매 당산나무가 있다. 할배 당산나무에 도달한 풍물패는 한동안 꽹과리와 북과 징, 장구를 치며 어우러진다.

“갠~지 갠~지 갠지~개갱”, “쿵~쿵~쿵~쿵”, “덩~따 쿵따 쿵~따”, “징~~~~징~~~~”

덩~따 쿵따 쿵~따 쿵따

꽹과리가 “딱” 하고 그치며 상쇠가

“어~루야 지신아 당산지신을 울리자”하고 꽹과리를 “갠~지 갠~지 갠지~개갱”치고

“이 동네 동민들은 남녀노소 막론하고 단명자 수명장수 박복자 부귀공명”하면

풍물패 모두가 합창하며 “어허라 지신아 지신지신 누르자”,

꽹과리는 “갠~지 갠~지 갠지~개갱” 북은 “쿵~쿵”, 장구는 “덩~따 쿵따 쿵~따”

“무자자 자손창성 병고자 즉득쾌차 농사자 장원하고 상업자 재대통 왕기대통 주옵소서”

“어~루야 지신아 지신지신 누르자“ “갠~지 갠~지 갠지~개갱”,

당산님 만대유전을 누리소서. 어~루야 지신아 지신지신 울리자.” “갠~지 갠~지 갠지~개갱”,

(중략)

할배 당산나무와 할매 당산나무에서 차례로 당산제를 올리고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재물을 바치며 한 해 동안의 안녕을 빈다.

어느덧 집집마다 지신밟기가 시작된다.

대문을 들어선 풍물패는 마당을 한 바퀴 돌면서 신명나게 풍물을 울린다.

갠~지 갠~지 갠지~개갱, 쿵~쿵~쿵~쿵, 덩~따 쿵따 쿵~따, 징~~~~징~~~~

주인은 정안수와 쌀을 그릇에 담아 촛불을 꽂아 상에 차려내고 풍물패를 맞이한다.

상쇠는 “지신지신 울려주자 성주지신을 울려주자”, 풍물패는 합창으로 “어~루야 지신아 지신지신 울리자” ”갠~지 갠~지 갠~지 개갱 “

“아들아기 낳거들랑 효자충신 되어주소” “어~루야 지신아 지신지신 울리자”

”갠~지 갠~지 갠~지 개갱 “

“달아기 낳거들랑 효녀열녀 되어주소” “어~루야 지신아 지신지신 울리자”

”갠~지 갠~지 갠~지 개갱 “

“좋고 좋은 지신아, 잡귀잡신은 물알로 천행만복은 이집으로” 풍물패는 합창하며 어허라 지신아 지신지신 울리자.”하면 꽹과리는 ”갠~지 갠~지 갠~지 개갱 “

<중략>

  대청지신풀이, 큰방성주풀이, 조왕지신풀이, 우물지신풀이, 장독지신풀이, 도장(광:곡식이나 잡곡을 넣어두는 창고)지신풀이, 마구간 지신풀이, 정낭지신풀이를 차례로 하고나면 언제나 끝은 “잡귀잡신은 물알로 만복은 이리로” 이다. 우리 집에도 해마다 지신밟기를 했는데 어머니는 늘 상에 정안수와 쌀 한 대접을 차려서 안방에 올려놓고 지신밟기가 끝날 때까지 천지신명께 집안의 안녕을 양손바닥을 비비며 빌곤 했다. 지신밟기가 끝나면 막걸리와 비빔밥이나 소고기 국을 내어 놓는다.

  달뜨기 몇 시간 전에는 풍물은 마을 청년들에게 넘어간다. 이제 청년들이 달맞이 행사를 하는 것이다, 청년들이 꽹과리와 북, 장구, 징을 치며 마을 뒷산을 올라가 달이 뜰 때까지 풍물놀이를 하며 달뜨기를 기다린다. 달이 뜨고 나면 저마다 소원을 빈다. 특히 달이 뜨는 것을 제일 먼저 본 사람은 처녀든 총각이든 그 해에 시집 장가를 제일 먼저 간다고 믿었다. 마을의 처녀총각은 좀 더 높은 곳에 올라가 달을 먼저 보려고 동쪽의 산 너머에 눈을 쳐 박았다. 누군가가 “달 봤다”라고 외치면 저마다 달을 조금이라도 먼저 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달이 뜨는 것을 보고나면 산꼭대기에 있는 봉화에 솔잎으로 불을 지펴 연기를 올린다. 달을 봤음을 이웃 동네에 알리는 것이다. 저 멀리 곳곳의 산꼭대기에서 연기가 치솟는 것을 보고서야 산에서 내려오는 것이다. 저마다 달그림자를 안고 내려오면 마을의 안녕을 비는 풍물패 소리가 앞산과 뒷산에 메아리쳐 울려 나오곤 했다.


  이번구간의 가장 높은 구간인 윤지미산을 오르는 길은 긴 완만한 오르막길이다. 정상에는 “윤지미산”이라 적힌 정상석은 서툰 글씨체의 정상석과 최근에 세운 듯 한 인쇄체의 정상석 두개가 있다. 그러나 대형 바위에 멋진 글씨로 쓰인 “신의터재”란 표식보다 정겹다.
윤지미산은 상주시 화동면 홈페이지에는 윤지미산의 유래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마륜 북동쪽에 있는 높이 538m의 산. 백두대간에 있다. 윤+지(支)+미(山) 윤지미산. ‘지’는 백제어에서 ‘고개(岐:기)를 뜻한다. ’윤’ 은 지명 ‘마륜’ 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백두대간의 산행기에 떠도는 윤지미산의 유래는 정말 터무니없다. ≪사서삼경중 대학에 나오는 윤집걸중(允執乞中: 세상을 두루 알아 맞힌다)에서 따왔다고 한다. 사자성어중 윤집걸중(允執乞中)을 찾아보니 윤집궐중(允執劂中)만 검색된다. 윤집궐중(允執劂中)은 ‘진실로 그 중(中)을 잡아라‘ 라는 뜻인데 중국고대 성군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왕위를 물려주면서 최초로 한 어구이다. ’왕위에 올라 정사에 임할 때 마음이 어느 한곳에 치우치지 말고 오로지 그 중심을 잡아 모든 일을 처리하라‘는 뜻이다.(위키 실록사전). 또한 중국의 자금성의 현판에 이 글귀가 현판에 있다. 윤집걸중(允執乞中)이라는 말이 어디에서 유래가 되었는지 알 수 없다. 또한 윤지미산이 윤집걸중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명확하지가 않다. 윤지미산과 윤집걸중은 윤자만 일치하고 있다.
또한 설에 의하면 옛날 여성 산악인 윤지미라는 여성 산악인이 백두대간이 하도 힘들어 이곳 윤지미산에서 울고 갔다고 해서 명명되었다고 한다.
윤지미산이 윤집궐중이든 윤집걸중이든 모두 근거가 없어 보인다. 윤지미라는 여성산악인이 울고 갔다는 설은 더욱 근거가 없어 보인다.
근거가 없이 마구잡이로 유래를 쓰고 그것을 무분별하게 복사하여 유포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

자연석 정상석
모산악회의 정상석


윤지미산의 내리막길은 밧줄이 있는 급경사이다. “백두대간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란 말이 실감난다. 긴 내리막길을 내려서자 화령이다.
화령은 속리산권의 1,000m가 넘는 험준한 산줄기가 시작되는 곳이다. 육십령에서 시작된 덕유산의 산줄기가 추풍령에서 끝나고 추풍령에서 이곳 화령까지 중화지구대가 이어지다가 화령에서 속리산권이 시작되고 험준한 산군들이 시작되는 곳이다.

렘블러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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