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도전

백두대간 제14구간

머투리 2022. 10. 24. 21:41
백두대간 북진종주 14구간
산행일자 2022년 10월 23일(일요일)
산행코스 우두령-바람재-황악산-여시골산-괘방령-눌의산-추풍령
도상거리 22.8km
실제거리 23.5km
산행시간 5시40-15시30분(9시간 50분)

오늘 대간 산행은 우두령(질매재, 720m), 삼성산(986m), 바람재(810m), 황악산(1,111m), 운수봉(689m), 여시골산(620m), 옛선비들의 과거길인 괘방령(과거시험에서 급제하여 붙인다는 괘방(掛榜)에서 유래되었다함)과, 가성산(716m), 눌의산(743m), 구름도 쉬어간다는 추풍령(221m)을 잇는 구간이다.
버스가 쌀쌀한 새벽공기를 가르며 괘방령에 도착한 것은 5시45분이다.

우두령에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대원들은 등산준비에 분주하고, 문대장의 외침소리가 공허하게 들린다. 체조와 인증사진을 찍고 하나둘 헤드랜턴을 켜고 분주하게 우두령 들머리를 오른다. 등산로를 따라 길게 늘어선 불빛은 하나둘 고개 너머로 사라진다. 앞뒤대원의 불빛에 의존하며 바람재에 도착하니 날이 밝았다. 드림 산악회 총무님이 표지석 앞에 포즈를 잡으니 카메라를 든 대원들이 쭉 둘러서서 사진을 찍는 모습이 모델 사진 찍는 것 같다.(사실은 다음차례의 대원들의 사진을 빨리 찍기 위해서 여러 대원이 카메라를 들고 있는 모습) 낙엽이 깔린 등산로는 융단처럼 푹신하다. 완만한 등산로는 몸에 무리가 없다. 대원들은 저마다 행복한 모습이다.

안개속 대간길
100 대 명산 황악산

바람재를 지나 한 시간여 어느새 김천 직지사의 황악산에 닿는다. 여전히 안개로 조망이 어렵다. 직지사에서 오른 산객들도 많다. 저마다 가져온 간식을 서로 권하며 나누어 먹는 모습이 아름답다. 황악산은 산새는 밋밋하지만 직지사에서 오르는 능여계곡은 봄에는 진달래와 벚꽃, 산목련이 아름답고 가을에는 단풍이 절경을 이룬단다. 황악산을 뒤로하고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앞서가던 대원이 안 보인다, 내리막을 조심해서 내려오는 바람에 조금 지체 된듯하다. 완만하고 푹신한 길을 뛰듯이 걸으니 직지사에서 올라오는 산객이 천천히 가라고 당부하신다. 안개와 우거진 떡갈나무로 조망이 어렵지만 푹신하고 완만한 오르내림은 다리근육에 힘을 보태는 듯하고, 낙엽을 밟는 소리는 귀에 속삭이는 듯하다. 여시굴은 밋밋한 오늘산행에 볼거리를 제공한다.

여시굴

여시골산을 거쳐 가파른 내리막을 지나 11시30분 괘방령에 닿는다.
괘방령 안내판에는 “충북과 경북의 경계지역으로 조선시대부터 괘방령(掛榜嶺)이라 불리고 있다. 괘방령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때 이 고개를 넘어 과거를 보러 가면 급제를 알리는 방이 붙는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라고 안내되어 있다. 인근의 추풍령이 국가업무수행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관로(官路)였다면 괘방령은 과거시험 보러 다니는 선비들이 즐겨 넘던 과거길이며, 한성과 호서에서 영남을 왕래하는 장사꾼들이 관원들의 간섭을 피해 다니던 상로(商路)로서 추풍령 못지않은 큰길이었단다.
호남이나 영남에서 한양도성으로 가는 고개는 괘방령과 추풍령, 조령이었다. 상주나 안동 등 경북 북부지방 선비들은 주로 조령을 이용했고 대구를 비롯한 성주 지방의 선비들은 쉬운 추풍령을 두고 괘방령 길을 넘었다. 이들이 괘방령으로 넘은 것은 고개의 이름 때문이다. 추풍령을 넘을 경우, 추풍낙엽(秋風落葉}처럼 과거에서 떨어진다는 속설에 괘방령은 이름 자체가 급제를 알리는 방이 붙는 다는 의미를 가졌으니 선비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장원급제문 옆에는 합격기원 돌탑이 있다( 사진옆)

수험생 합격 기원 소원탑


괘방령 표지석

비록 이곳이 해발300의 낮은 고개이지만 민족정기의 상징인 백두대간의 정기가 잠시 숨을 고르다가 황악산으로 다시 힘차게 뻗어 오르는 곳이다.
괘방령을 알리는 표지석이 곳곳에 놓여있다. 무엇보다 대간산행 중 처음으로 점심을 괘방령산장 식당에서 먹기로 되어있다. 식당은 괘방령을 알리는 장원급제 홍살문과 괘방정 정자와 잘 어울러지는 기와집이다. 식당 안에는 산장을 거쳐 갔던 전국의 백두대간 도전 산악회 리본들이 빼곡하게 걸려있다. 리본들은 백두대간도전이 힘들고 의미 있는 도전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식당 안은 분주하였지만 정갈하고 맛있는 밥상이 이내 차려진다. 금방 지어진 찰기가 있는 밥과 얼큰한 시락국, 싱싱한 상추, 매콤한 김치전과 어묵, 무엇보다 막걸리 한 사발과 상추위에 돼지두루치기를 올려 막된장에 풋고추 한입은 대간의 고달픔을 잊게 하기에 충분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괘방령산장에서의 점심식사였다. 괘방령 곳곳에는 괘방령이 백두대간의 줄기임을 알리는 표지석과 안내판이 즐비하다. 그것은 우리 백두대간 도전 팀을 더욱 우쭐하게 만든다.
괘방령을 뒤로하고 백두대간을 알리는 표지판 사이로 길을 재촉한다. 등산길은 완만한 오르막이 끝없이 이어진다. 백두대간 중에 대원들과의 이야기는 백두대간의 힘듦을 잊게 한다. 백두대간의 힘든 여정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가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백두대간이 민족의 정기가 서린 우리나라의 산줄기이기 때문은 아니다. 산이 웅장하고 아름답기 때문은 더욱 아니다.
꽃<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불과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때
그는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 <중략>
우리는 모두 누구에겐가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 한다. 누구에겐가 의미 있는 존재는 “서로의 공감”이다.

백두대간을 하면서 김춘수시인의 꽃처럼 서로가 꽃이 되는 것이다. 서로를 격려하며 힘듦을 서로 공감하는 것이다. 그것은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백두대간의 힘든 여정을 추켜세우며 인정해주는 누구인가가 있기 때문이다. 백두대간이 혹은 백두대간으로 “누구에겐가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백두대간을 같이하는 대원들 간에는 더욱 “서로가 의미 있는 존재로 공감”하기 때문이다.

내가 어릴 적 아버지는 초가집의 이엉을 모두 걷어 내고 기와를 지붕에 얹어 초가집을 기와집으로 바꾸셨다. 아버지는 소달구지를 끌고 집에서 오리(2km)거리에 있는 기와 굽는 가마에 가서 기와를 실어 오셨는데 기와를 구하러 갈 때마다 아버지를 따라 가마에 갔다. 가마에 가면 각종 옹기들이 쌓여 있고 옹기를 만드는 물레가 있고 흙탕물처럼 보이는 유약을 담은 질그릇이 이리저리 놓여 있었다. 무엇보다 구경거리인 것은 찰흙을 잔뜩 바른 둥그렇고 긴 가마에서 옹기를 굽는 불을 구경하는 것이다. 가마는 따닥따닥 나무 타는 소리와 함께 후끈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어쩌다가 가마가 비어 있을 때는 좁다란 화구로 들어가 가마 안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나오곤 하였다. 가마 안과 옹기가 널려있는 마당은 숨바꼭질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소달구지에 기와가 모두 실리면 소달구지 위로 올라가 앉아 집에 오곤 하였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천자문을 배웠는데 지금으로 치면 선행학습을 한 것이다. 아버지는 사랑방에서 이웃동네에 계시는 훈장님을 모셔서 한자를 배우셨다. 훈장님이 오실 때마다 동네 젊은 사람들이 와서 아버지와 함께 공부하셨다. 여름에는 일손이 바빠 훈장이 오시지 않고 겨울철 서너 달 동안만 오셨는데 그래서 겨울철에는 사랑방에 늘 사람들이 오가고 하였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훈장님은 나를 불러 앉히고 천자문을 읽게 하셨다. 다음날은 읽은 천자문을 외우게 하셨다. 그리고는 잘하였다고 칭찬해주셨다. 난 그런 훈장님이 좋았다.

“하늘 천, 따지, 검을현, 누를황, 집우, 집주 ~ ”

이렇게 하여 천자문을 끝까지 외우게 되었는데 한자쓰기는 가르쳐 주지 않으셨다. 훈장님은 천자문의 뜻도 가르쳐 주셨는데 그때는 뜻을 잘 모르고 외우기만 한듯하다. 그렇지만 훗날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는 신문을 읽을 정도로 한자 실력이 뛰어났다.

“아 아부지요 야가 또 오줌을 쌋심더”
“머라카노 오줌 쌌다고“

아버지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어머니도 대화를 더 이상 이어 가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어느새 들에 갔다 오시고 익모초를 한 아름 베어 오셨는데 우물가에서 절구로 찧어 익모초 즙을 짜서 나를 불러 한 사발 쉬지 않고 마시라고 하셨다. 쓰디쓴 익모초 즙을 쉬지 않고 들이키기는 쉽지 않았지만 참아내고 끝까지 마셨다. 지금도 쓰디쓴 익모초 맛을 잊지 못한다. 어머니는 아이들이 배탈이 나거나 오줌을 싸거나 하면 이 익모초를 만병통치약으로 여기시고 마시게 하셨다. 쓴 맛 때문에 다른 형제들은 조금 마시다가 안 마시기 일쑤였지만 나는 끝까지 다 마셨다. 훗날 이 익모초 즙을 마신 결과는 간 건강에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한다.
완만하고 낙엽이 덮인 융단 같은 등산로를 따라 걷다보니 어느덧 눌의산에 도착한다. 맑게 갠 가을 하늘에 눈이 부시다. 눌의산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넓은 들판에 우리나라의 대동맥인 경부 고속도로와, 국도4호선, 철로가 길게 뻗어있는 추풍령이 눈 아래 보인다. 우리나라의 대동맥이 남북으로 뻗어 있다. 추풍령을 바라보며 눌의산을 내려선다. 눌의산 아래 내리막길은 험한 길은 아니지만 한발 한발 조심해서 내려선다. 한 시간여 완만한 내리막길을 걸으니 경부고속도로가 나타난다. 대간 길에 익숙한 대원의 길안내에 따라 날머리인 추풍령 노래비에 수월하게 도착한다.
추풍령(秋風嶺)은 충청북도 영동군과 경상북도 김천시를 사이데 있는 해발 221m의 고개로 “가을바람고개”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영동군 추풍면에서는 “가을 물이 일찍 들고, 걷이가 풍성하다” 는 추풍(秋豊)이라고 한다.(자기 고장을 아름답게 꾸민 억지 예기 일듯). 추풍령은 소백산맥과 백두대간에서 제일 낮은 곳으로 조령(632m)이나 죽령(696m)에 비해 넘어가기가 수월했다. 현재는 경부선과 국도 제4호선과 경부고속도로가 통과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기사님이 준비한 물을 종이컵으로 퍼서 얼굴과 머리를 씻는다. 계곡물의 알탕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얼굴의 땀을 씻어내니 한결 개운하다. 총무님이 분주하게 준비한 국수와 두부보쌈 안주에 맥주 한잔으로 오늘의 의미 있는 대간의 피로를 푼다.

추풍령 노래비에는


구름도 쉬어가는 바람도 쉬어가는
추풍령 구비마다 한 많은 사연,
기적도 숨이차서 목메어 울고가는
추풍령 구비마다 싸늘한 철길
추풍령은 구름도 쉬어가지 않고 바람도 쉬지 않는 얕은 고개(해발221m)이다. 또한 기적도 숨이 차지 않는 얕은 고개이지만 추풍령 노래가사는 우리들의 가슴속을 뭉클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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