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도전

백두대간 북진종주 제 36구간

머투리 2023. 8. 31. 00:22

 

백두대간 북진종주36구간
산행일자2023년 8월 26일(토요일)∼27일(일요일)
산행코스진고개-동대산-차돌바위-두로봉-신배령-망월봉-은복산-마늘봉-약수산-구룡령
도상거리21.9km
실제거리23.5km
산행시간11시간 0분(휴식시간포함)

     드림산악회 백두대간 북진종주 36구간은 진고개(1,072m), 동대산(1,433m), 차돌배기(1,230m), 신선목이(1,120m), 두로봉(1,421m), 신배령(1,210m), 만월봉(1,280.9m), 응복산(1,359m), 마늘봉(1,126.6m), 약수산(1,306m), 구룡령(1,013m)에 이르는 거리가 23.5km인 구간이다.

    동대산과 노인봉 사이 안부인 해발고도가 1,072m인 진고개에서 해발고도가 1,000m 아래로 떨어지는 일이 없이 동대산과 두로봉과 신배령, 약수산을 거쳐 구룡령까지 이어진다.

   오늘 걷는 백두대간 길은 오대산에서 설악산으로 이어지는 구간이고, 양양과 홍천을 경계로 영동과 영서로 나누는 마루금이다.

   진고개에 백두대간 북진 종주 원정대를 태운 버스가 도착한 시간은 2시 20분이다.

  버스에서 내린 백두대간 종주 원정대는 분주하게 산행 준비를 한다. 한여름이지만 날씨는 서늘하고 공기는 습하다.

  진고개 주차장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탐방로 안내도 좌측에 있는 나무 계단을 오른다. 동대산 까지 1.7km 길은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지만 해발고도 361m을 올려야하는 가파른 오름길이다.

  차단기를 지나 계단을 올라서면 왼쪽으로 너른 배추 밭이 있으나 캄캄한 밤에 보일리가 없다.

   캄캄한 등산로를 따라 백두대간 원정대 대원들은 순식간에 어둠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진고개 들머리의 대원들

칠흑같이 어두운 등산로를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한 채 걷는다. 바람이 없는 고요한 숲속으로 고개를 돌려 불빛을 비춰보니 신갈나무와 단풍나무가 육중하게 뿌리를 내리고 서있다.
  
   서늘한 새벽공기 속에서도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니 금세 온몸은 땀으로 젖는다.

    진고개를 출발한지 50여분 만에 오대산 5개 봉우리중의 하나이며 비로봉의 동쪽에 있다하여 이름 붙여진 동대산(1,433m)에 닿는다. 오늘 구간의 최고봉이다.

   잠시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이리저리 뒤틀리고 굽은 고목과 고사목들은 고산지대의 혹독한 날씨를 알려주고 있다. 걷기 좋은 완만한 오르내림이 계속된다.

   잠시 내림이 이어지더니 3m는 됨직한 큼직한 차돌바위가 이채롭게 서있다. 차돌배기(1,230m)이다.

   진고개를 출발한지 2시간만이다. 주변은 깨진 석영 부스러기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여기서 두로봉까지 4.0km 길은 부드러운 편안한 등산로가 이어진다.

  차돌배기에서 5분 정도 가니 커다란 구멍이 나있는 고목이 나타난다. 많은 분들의 산행기에서 봤던 그 고목이다.

  

구멍 뚫린 고목

   완만한 내리막길을 지나 신선목이 안부에 도착한다. 주변은 높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키가 큰 단풍나무와 자작나무들이 우리 백두대간 원정대를 말없이 응원해준다.

  이제 새벽 여명이 밝아온다. 헤드랜턴의 불빛은 새벽의 여명에 파묻혀 버리고 만다.
안부에서 가파른 오름길을 힘겹게 오르니 오른쪽에서 아침 해가 장엄하게 떠오르고 있다. 일출의 멋진 장면을 휴대폰에 담아보지만 눈에 보이는 것만 못하다.

두로봉 오름길의 일출


   잠시 된비알 끝에 두로봉 표지 목에 닿는다. 여기서 출입금지 안내판 뒤로 금줄을 넘어서면 헬기장 한쪽에 비로봉 정상석이 외롭게 서있다. 여기(두로봉)에서 신배령까지 비탐구간이다.
갑자기 잡목사이로 길은 좁아지고 고개를 숙여야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잡목이 우거져 있다. 키가 작은 잡목들은 갈 길이 바쁜 나를 잡아끌기도 하고 가로 막기도 한다. 또한 백두대간 길에 흔하게 보이던 이정표도 리본도 보이지 않는다.

  헬기장을 가로 질러 좌측으로 내려서니 경사가 제법 급한 사면 주변으로 주목이 군데군데 서 있다.

  날은 완전히 밝았다. 운무로 가득차서 멀리까지는 조망이 안 되어 아쉽지만 대신 길 양옆의 새벽 이슬을 머금은 야생화가 나를 반긴다.

  어수리 꽃이 진한 녹색의 풀숲에 하얀 무늬를 새긴 접시처럼 어우러져 산객의 눈길을 잡는다. 어수리는 강한 향 때문에 입맛을 당기는 산나물로도 유명하다.

어수리


  세계에서 오직 한반도에서만 자라는 금강초롱은 그 귀한 몸짓으로 나를 반긴다.

금강초롱


산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또 하나의 꽃은 투구 꽃이다. 백두대간 26구간에서 투구봉을 지나면서 투구봉 주변에 투구 꽃이 많지만 겨울이라 볼 수 없다고 아쉬워했던 그 투구 꽃이다. 지금쯤 투구봉 주변은 투구 꽃이 만발해 있을 것이다.

투구꽃

  투구 꽃은 옛 로마 병정이 쓰던 투구와 비슷하다고 붙여진 이름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속리산 이북의 고산지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꽃말이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로 유독성 식물로서 연보라 빛의 꽃은 예쁘지만 뿌리에 독성이 많아 옛날에 사약 재료로 사용했다고 하는 꽃이기도 하다. 그 독한 독을 품고 있으면서 꽃은 왜 저리 예쁘고 신비로울까?

   높은 산 깊은 숲속을 밝혀주는 촛대를 연상시키는 촛대승마도 고산지대에서만 볼 수 있는 귀한 꽃이다.

  오리를 닮은 꽃 흰진범이 기이한 꽃모양으로 신비롭다. 오리들이 쫑긋 귀를 세우고
귀여운 오리궁둥이를 드러내고 뭔가 다정하게 의논을 하는 모습이다. 흰진범 역시 아름다운 꽃이지만 투구 꽃처럼 독초이다.

흰진범
촛대승마


    이렇게 멀리 조망이 되지 않는 백두대간 길에 길 옆의 야생화는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해준다. 8월의 짙은 초록의 풀숲에 피어 있는 흰 꽃과 보라색 꽃은 천상의 꽃으로 보인다.

  A-5, A-6라고 쓰여 있는 암호 같은 표시를 지나니 산죽 밭에 통제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신배령에 도착한다.

  신배령은 주변에 돌배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고 보니 등산로에 작은 배들이 떨어져 있는 곳을 여러 번 보았다. 이제 비탐구간을 벗어났다. 갑자기 길은 편해지고 이정표가 나를 반긴다.

  신배령에서 한 시간여 만월봉 안내판에 닿는다. 만월봉에서 40여분 비교적 완만한 등로를 따르니 응복산에 닿는다.

  응복산을 뒤로하고 내리막을 내려서니 통나무 계단이다. 어쩐 일인지 통나무 계단은 통나무 사이로 움푹 패어서 발을 들여 놓기도 빼기도 어렵다.

위험한 통나무 계단


  통나무 계단 옆으로 걷기도하고 통나무를 발로 디디면서 조심스럽게 내려선다. 주변은 신갈나무와 단풍나무가 빼곡히 숲을 이루고 있다. 길 양옆으로는 여전히 어수리, 투구꽃, 금강초롱, 촛대승마, 흰진범, 참취꽃이 낯선 산객을 반긴다.

  
   은자의 집에서 달아 난후 한동안 은자를 보지 못했다. 아니 은자의 얼굴은 볼 수 있었지만 어떻게 지내는지 서로 알지 못했다. 서로의 소식은 탱자나무에 넣어둔 편지나 은자동생이 간혹 몰래 전해주는 편지를 받아보고 알 수 있었다. 바쁜 나날들이 이어졌지만 늘 은자 소식이 궁금했다. 은자의 존재 자체가 나에게 든든한 힘과 위로가 되었다.

  아버지의 병환이 깊어지자 친척들의 방문도 부쩍 늘어났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병문안 오신 친척들에게 칼국수나 술을 대접했다. 친척들은 나에게 공부 하지 말고 일을 할 것을 주문하셨다. 그런 친척들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좌절했다. 나의 장래가 나의 의지와 희망과는 상관없이 집안의 형편에 맞추어 결정하는 친척들이 몹시 싫었다.

  여름 방학이 되었다. 학교에 가지 않았으나 농사일로 여전히 바빴다, 아버지는 별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늘 나를 신뢰하고 계신 듯 했다.

  아버지는 내가 농사일에 서툴거나 집안일이 서툴고 마음에 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버지는 손님이 오시면 늘 나를 인사를 시키셨다.
  
   그리고 아버지는 방문하신 손님들에게 나를 칭찬하시는 것을 잊지 않으셨다.

   신뢰한다는 것은 나를 인정하신다는 것이다. 아직도 아버지의 나에 대한 한없는 신뢰는 나에게 힘이 되어주신다.

   나는 친척들이 공부하지 말고 농사나 지으라고 하실 때 마다 더욱더 밤을 새워 공부를 했다. 친척들이 그럴 때 마다 동생들을 다그쳐 공부를 시켰다.

  나는 농사는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하루가 다르게 공장이 들어섰다.

  부산에는 대형 신발 공장과 라디오 공장이 생겼고 동네 형들과 누나들은 신발공장과 라디오 공장에 취직하러 나갔다.

  70년대에 들어서자 정부는 경공업을 통한 국가 산업화는 한계가 있다는 인식하에 중화학공업 육성을 국정의 최대과제로 삼았다.

  그리하여 울산에는 대형 정유공장이 들어서고 포항에는 대형 제철공장이 세워졌다.

  동네 형들은 조상대대로 해오던 농사를 팽개치고 부산, 울산, 포항으로 취직하러 나갔다.

  명절에는 객지에 나가 취직한 사람들이 시골에서는 구경도 못하는 옷을 입고 손에는 선물 꾸러미를 들고 만원 버스를 타고 귀향하였다.

  도시로 나가 취직한 사람들이 명절에 부모님에게 드릴 용돈과 선물 꾸러미를 들고 고향에 오면 부모님들은 아들딸을 자랑스러워했다.

  산업화가 될수록 농촌은 피폐해 졌으며 희망이 사라져 갔다. 나는 도회지의 여유로움과 안락함을 상상하며 꿈을 키웠다.

  그러나 아버지의 병환은 깊어만 가고 집안은 늘 쪼들렸다. 어머니는 새벽에 나를 깨워 일하러 가자고 하셨다. 그러면 덜 떠진 눈을 부비며 들에 일하러 가곤 하였다.

  나는 동생들에게는 늘 공부를 하라고 재촉했다. 아버지의 병환이 깊어질수록 동생들에게 공부하라고 더욱 재촉했다.

  가을이 되면 어머니는 사과 밭에 있는 조그만 원두막에 주무시러 가셨다. 어머니는 사과가 익기 시작할 때부터 사과를 따서 창고에 넣을 때 까지 사과를 지키기 위해서 원두막에 주무셨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먹을 것이 귀하여 서리하러 아이들이 사과 밭에 들어 왔다. 원두막에 불을 켜고 사람이 있는 것을 알면 아이들이 들어오지 않았다.

  늦가을이 되면 원두막은 몹시 추웠다. 간혹 어머니를 대신하여 원두막에서 잘 때면 한 이불을 뒤집어써도 추웠다.


   응복산에서 긴 내리막이 이어지더니 오르막이다. 이제 약수산 정상이 얼마 남지 않은듯하다. 이정표에 구룡령5.12km, 약수산 3.7km를 적고 있다.

생명들로 가득찬 숲
고산지대의 주목

   하지만 바로 봉우리을 오르면 약수산이 나타날 것 같지만 오르막을 오르고 나면 또 다른 봉우리가 위세 좋게 버티고 있다.

  어느덧 동행이 되어 버린 k2산악회 백두대간 북진 팀들과 한 팀이 되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걷는다.

  ‘저 봉우리를 넘으면 약수산입니다’ 를 몇 번 들은 건지 가늠이 안 될 즈음 약수산 정상에 닿는다. 언제나 그렇듯 백두대간은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다.

힘겹게 오른 약수산 정상석


  몸은 지쳤지만 이제 내리막만 남았다고 마음속으로 위로를 해본다. 구룡령 2.8km는 내리막이다. 하지만 급경사이다. 힘겹게 내리막을 내려서니 구룡령 정상석이 우뚝 서 있다.

구룡령 정상석


  홍천과 양양을 이어주는 56 번국도 중 해발 1,032m에 위치하는 구룡령이다.
진고개를 출발한지 11시간 만이다.

  계곡물을 받아 놓은 물 대야의 물을 한바가지 뒤집어쓰며 오늘 대간 길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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