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도전

국립공원으로 승격된 팔공산 산행

머투리 2024. 10. 14. 18:26

산행일시 : 2024년 10월 11일(금)

   팔공산은 삼국시대부터 신라인들이 “아버지의 산(부악,父岳)” 또는 "중심이 되는 산(중악,中岳)“으로 신성시 하여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산이다.

   팔공산은 봉황의 모습으로 대구 분지를 감싸는듯하여 대구의 진산으로 불린다.

  최고봉인 비로봉(1,192m)이 봉황의 머리이고, 동봉(1,167m)과 서봉(1,150m)이 솟아오른 봉황의 날개라고 한다.

  동화사 자리는 봉황의 아기 궁이라서, 겨울에도 오동나무 꽃이 필 정도로 따뜻하다. 절을 중창할 때 오동나무 꽃이 상서롭게 피어있어 동화사(桐華寺)라고 불렀다한다.

  팔공산은 예로부터 불교문화의 중심지여서 수많은 사찰들이 산재해 있다.
   대표적이 사찰로 동화사, 은해사, 선본사, 송림사, 파계사, 북지장사, 환성사, 거조사, 관암사, 관음사, 삼존석굴사(제2석굴암, 군위석굴암)등이 있다.

   대구분지는 과거에 습지와 호수가 많아서, 여러종의 새가 많이 살았는데, 특히 닭과 물닭 등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대구의 예전 지명이 달구(닭)벌이 된 것이다. (옛날 대구지방 사람들이 병아리를 보고 달구(닭) 새끼라고 했다한다.)

  팔공산에도 조류인 꿩이 많이 살아서 “꿩산”이었는데 신라말∼고려초에 지명이 한자어로 바뀌는 과정에 “꿩산”이 “공산(公山)” 이 되었다고 한다.

  공산이 팔공산이 된 유래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견훤이 후백제를 세운 후 신라를 침공하여 경주를 함락하고, 포석정에서 경애왕을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였다.

  경애왕이 왕건에게 구원을 요청하자, 왕건이 후백제의 침공을 받은 신라를 구원하기 위해 기병5,000의 군사를 이끌고 동화사에서 경주로 가기위해 영천 방면으로 팔공산의 능성재를 넘어 지금의 은해사 입구로 추정되는 태조지에서 전투를 벌였지만 패배하였다.

  군사를 재정비한 고려군은 서변천과 금호강이 합류하는 살내에서 견훤의 군대를 서쪽 방향으로 밀어 붙였다.
  
  그러나 동화사와 파계사 사이의 왕산에서 견훤군대의 공격으로 고려군은 크게 패하게 되고 왕건은 목숨을 잃을 지경이 된다.

   이 전투를 공산 전투라고 하는데 왕건으로 변장하여 적진에 투항하여 목이 잘린 신숭겸 장군의 희생으로 목숨을 건진 왕건이 고려를 세운 후 위왕대사(爲王代死:왕을 대신해서 죽음) 신숭겸 장군과 공산 전투에서 전사한 8명의 고려장군을 기리기 위해서 공산(公山)에 8(八)자를 넣어 팔공산(八公山)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이후 팔공산은 1980년 5월13일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2023년 12월31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오늘 산행은 고려 태조가 신라를 도우러 군사를 이끌고 갔던 그 루트를 답사하게 된다.

  팔공산을 오랜만에 찾았다.
  팔공산 자락에 자리한 은해사 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은해사는 809년(신라현덕왕1년) 헤철국사가 혜안평에 창건한 사찰로 해안사라 하였다. 그 후 중창과 중수 등을 거쳐 1546년(조선명종1년) 천교가 지금의 장소로 옮겨 법당과 지석을 건립하여 인종의 태실을 봉하고 은해사라고 이름 지었다.

  은해사(銀海寺)는 불, 보살, 나한, 등이 마치 은빛 바다가 춤추는 극락정토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은해사 일주문(10시20분)-1.5km-신일지 (10시50분)

은해사 일주문


  10시 20분 은해사 일주문을 통과하니 울창한 송림(松林)을 만난다.

  숙종 때 일주문일대의 땅을 매입하여 송림을 조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은해사 송림


  이곳 송림까지 중학교 때 가을 소풍을 갔던 곳이다. 학교에서 은해사 송림까지 거의 18km 거리이다.

  왕복 36km를 어떻게 걸어갔는지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다. 은해사 입구의 마을의 담장에 탐스럽게 달려 있던 감이 지금도 그대로 달려 있어 옛날의 그 기억이 새롭다.
  
  산등성이를 돌아가면 곳곳에 피어 있던 구절초와 국화를 꺾던 소년, 소녀들의 해맑은 모습이 어제처럼 가깝다.

  은해사 송림에서 큰 바위에 걸터앉아 노래 자랑하던 모습과 손수건 돌리기, 보물찾기 하던 그때의 기억이 또렷하다.

  은해사 일주문에서 보화루 까지 숲길을 금포정(禁捕町)이라 한다.

  금포정이란 이 일대에서는 일체의 살생을 금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은해사 일대에서는 수렵을 못하게 하여 멧돼지가 많이 서식하고 있다.

  은해교 앞에는 “대소인하마비” 가 세워져 있다. 하마비는 은해사가 대사찰이었음을 말해주는 증표이다.

  은해교를 지나면 정면에 보화루가 서 있다. “보화루“ 는 은해사의 대문 구실을 한다.

추사 선생 친필 보화루 현판


  이 문을 통하여 불국토에 들어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판의 글씨는 추사 김정희가 유배생활을 끝내고 돌아가면서 쓰신 현판이다.

  대웅전인 극락보전을 둘러보고, 성보박물관을 거쳐 포장도로를 따라가면 은해사로부터 1km거리에 신일지가 나타난다. 일주문을 지나 온지 40여분 만이다.

  신일지는 봄에는 물속에 비치는 초록의 녹음이 아름답고 가을이면 물속에 비치는 단풍이 아름답다.

  왼쪽의 묘봉암, 중암암, 백흥암 안내 표지판을 지난다. 이제 완전한 숲길이다.

  신일지(10시50분)-3.8km-중암암(12:00분)

  중암암가는 길은 올라 갈수록 가팔라진다. 신일지에서 중암암까지 3.8km길은 차량이 다닐 수 있는 포장도로이다. 하지만 울창한 숲길이다. 중앙암까지 가는 동안 지나가는 차량은 거의 없다.

  오른쪽으로 백흥암를 지난다. 백흥암 주차장에는 차량들도 가득하고, 법당에는 신도들이 가득하다. 아마도 천도제가 열리고 있는 것 같다.

  길은 한층 가팔라지고 어느덧 중암암 지름길로 돌계단을 오른다.
제법 긴 돌계단이 나타난다. 거친 숨을 몰아쉬고 나면 중암암이 나타난다.

바위 사이의 중암암


   중암암(中岩庵) 암자는 거대한 자연석 사이에 세워져 있어서 “돌 구멍 절”이라고도 한다.

  중암암은 은해사에서 4.8km, 해발 780m 에 위치해 있다.

  해발 일천 미터에 있는 절은 지리산 법계사와 설악산 봉정암등이 있으나 중암암은 780m의 높이에 있지만 절벽에 세워져 있어 법계사와 봉정암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아 보인다.

  이 중암암은 김유신과 원효대사가 수행하고 기도했다고 전해진다.

  중암암은 해우소의 전설로도 유명하다.
옛날 통도사, 해인사, 중암암에서 온 스님 셋이 모여 서로 절 자랑을 했다.

“우리 절은 법당 문이 어찌나 큰지 한번 열고 닫으면 그 문지도리에서 쇳가루가 한말 석 되나 떨어진다”며 통도사 스님이 절의 규모를 뽐냈다. 해인사 스님도 질수 없다는 듯이“ 우리해인사는 스님이 얼마나 많은지 가마솥이 하도 커서 동짓날 팥죽을 쑬 때는 배를 저어야만 저을 수 있다” 했다.

  두 스님의 자랑을 가만히 듣고 있던 중암암 스님은 “ 우리 절 뒷간은 그 깊이가 어찌나 깊은지 정월 초하룻날 볼일을 보면 섣달 그믐날이라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고 한다.

  이 전설은 중암암 입구 도로에 세워져있다.
중암암의 옛 해우소는 지금은 폐쇄되고 새로운 해우소를 만들어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중암암(12시00분)-1.8km-능성재(1시10분)

  중암암 바로 위 등산로를 오르면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삼층석탑이 나온다. 삼층 석탑을 지나 돌계단으로 된 등산로 오르면 극락굴이 있이 굴 안으로 들어가서 반대쪽
  

중암암 극락굴


  바위틈으로 나나가면 중앙암 본당이 나타나지만 굴이 좁아 들어 갈수가 없다.
굴을 나와 조금 오르면 큰 바위 3개가 나란히 놓여있는데 삼인암(三印庵)이다.

  자식이 귀한 집에 시집간 처녀가 아이를 낳을 수 없어 스님이 알려준 이곳 삼인암에서 정성을 드려 아들 삼형제를 낳았다고 전해진다.

  장군수는 이곳에서 절 반대쪽으로 내려서면 만날 수 있으나 시간이 늦어 발길을 능선으로 돌렸다.
  
  장군수(將軍水)는 김유신 장군이 심신을 단련할 때 마신 물이라고 전해진다.

  삼인암 옆에 설치된 벤치에 앉아 김밥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는다. 은해사 주차장을 출발한지 2시간 만이다.

  다시 길을 나선다. 멀리 팔공산 비로봉과 동봉이 손에 잡힐 듯 다가와 있다. 부드럽고 완만한 등산로를 따르니 능성재이다.

능성재에서 바라본 팔공산 비로봉과 동봉


능선재에서 왼쪽으로 1.8km 거리에 갓바위, 오른쪽 능선을 따르면 비로봉까지 6km이다. 또한 은해사에서 능성재 까지 6km이다.

  능성재는 공산전투 때 왕건의 군대가 동화사에서 이 재를 넘어 은해사로 .갔다고 전해지고 있다.

  은해사에서 능성재 까지 6km를 점심시간 포함해서 3시간 걸렸다. 비로봉까지 왕복시간을 짐작해 보니 앞으로 6시간은 더 걸어야 한다.


능성재(1:10분)-0.9km-삿갓봉(1시50분)-1.9km-도마재(2시30분)-2.7km-동봉(4:00분)-0.5km-비로봉(4시20분)


  팔공산 주능선에 들어서니 갑자기 오르내림이 가팔라지고 등산로는 점점 암릉이 많아진다.
또한 위치표지목이 갑자기 많아진다. 250m 마다 위치표지목이 설치되어 있다. 위치표지목 번호 30이다.

  능성재에서 30여분 삿갓봉이다. 삿갓봉에는 정상석만 덩그러니 서 있다.

  삿갓봉은 대구시 동구 도학동과 영천시 청통면의 경계에 솟아있다. 봉우리의 모습이 마치 삿갓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디지털대구동구문화대전)

  오르내림은 계속되고 산길은 가팔라지고 암릉구간도 나타난다.

  능선에서 바라본 동봉과 비로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다.

  능선을 따라 40여분 도마재(신령재)에 닿는다. 도마재는 도마를 거꾸로 엎어 놓은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도마재에서 오른쪽으로는 신령 치산계곡으로 가는 길이다. 도마재에서 치산계곡의 수도사 까지 4.5km이다.

  동봉과 비로봉과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다. 오른쪽 조금 벗어난 지점 절벽위에 팔각정을 세워 놓았다. 이 팔각정에서 바라보면 팔공산 비로봉과 동봉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가 장쾌하고 아름답다.

  팔각정에서 동봉 오르는 길은 암릉길이다. 동쪽 사면을 돌아 마지막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동봉이다.

동봉정상


  동봉에서는 사방 막힘이 없다. 남쪽으로는 경산, 서쪽으로는 대구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고 남쪽으로는 선본사 갓바위 쪽으로 팔공산의 장쾌한 능선이 조망되고, 동쪽으로는 은해사와 영천 시내가 막힘이 없이 조망된다.
 

동봉에서 바라본 갓바워 방향 능선


  동봉을 내려와 서쪽사면을 타고 내려와 다시 오르면 KBS와 MBC 중계 탑이 있는 팔공산의 최고봉 비로봉에 닿는다.

  비로봉은 사방이 철망으로 막혀 있고 중계 탑이 가려져 있어 조망이 조금은 아쉽다. 만약 중계탑 시설이 없다면 팔공산의 장쾌한 능선을 조망할 수 있을 것이다. 서쪽으로 기운 태양의 햇볕이 장렬하다.

  비로봉을 내려와 하늘정원으로 향하는 넓은 공터에서 북쪽 하늘 정원방향도 막힘이 없이 조망된다.

  비로봉에서 동화사 방향에서 올라온 다수의 등산객을 만난다. 능성재에서 동봉아래까지 부부 한 쌍과 같이 왔으나 팔각정에서 헤어졌다.
 
  비로봉(4시20분)-0.5km-중봉(4시47분)-0.7km-동화사갈림길(5시22분)-2.7km-동화사(6시 47분)-동화사 버스 정류소 입구(7시 20분 )

비로봉에서 다시 동봉을 향한다. 원래 계획은 은해사에서 비로봉 찍고 다시 은해사로 원점회기 산행(왕복 25km)을 계획했으나 해가 짧아 동화사로 하산하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비로봉에서 내려와 6m 길이의 거대한 팔공산 동봉 약사여래입상 앞을 지난다.
다시 중봉에 닿는다.

동봉 약사여래 입상


  역시 중봉에서 사방팔방 막힘없는 조망이 일품이다, 비로봉이 팔공산에서 최고봉이지만 조망에서는 동봉이 팔공산의 으뜸 봉이다.
동봉에서 잠시 휴식 후 나무계단을 내려와 동화사 갈림길을 만난다.

주능에서 동화사 방향 갈림길


  여기서 동화사까지 2.7km 녹녹한 거리가 아니다.

  서둘러 하산을 결심한다. 넓은 내리막길은 가파르고 그다지 좋은 산길은 아니다.

  팔공산이 국립공원이 되어 많은 기대를 안고 찾았지만 비로봉-갓바위의 능선에는 필요 없어 보이는 위치표시가 250m마다 세워져 있다.

   그러나 하산 길은 이정표가 없거나 갑자기 다른 지명이 나타나 당황스럽다.

동화사 내려가는길


  염불암 갈림길에서 어두워 랜턴을 켰다. 사방은 어둡고 간혹 어디서 울리는지 모를 범종소리가 길게 이어진다.

  길은 이리저리 여러 갈래지만 이정표는 없다. 그냥 산 꾼의 감각으로 걸어야 한다.

  왼쪽으로 동화사 0.1km 이정표를 만난다. 동화사로 접어들었지만 버스 정류소까지는 절의 크기만큼 멀다.

동화사 0.1km지점


  드디어 불빛이 보이고 동화사 입구 차량 차단기가 나타나고 길 건너 버스 정류소다.
카카오 택시를 호출하지만 답이 없다.

  하는 수 없이 동대구로 가는 버스를 타고 아파단지에 내려서 마침 정차하고 있는 개인택시기사에게 은해사까지 얼마냐고 했더니 5만원 달란다.

  너무 비싼 것 같아 uber 택시를 호출하니 4만원 달란다. 마침 마음씨 좋은 택시기사와 이러저런 이야기를 하며 은해사 주차장에 내려 차량을 회수하니 8시1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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