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도전

백두대간 제21구간

머투리 2023. 2. 13. 23:25

백두대간 북진종주 21구간
산행일자 2023년 2월 12일(일요일)
산행코스 버리기미재-장성봉-악휘봉-구왕봉-희양산-성터-은티마을
도상거리 14.8km
실제거리 15.2km
산행시간 9시간30분(휴식시간포함)

문경시 가은읍의 버리기미재에 버스가 도착한 시간은 6시 50분이다. 버스에서 내리니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도 않았다. 서둘러 헤드랜턴을 켜고 산행준비를 한다. 버리기미재에서 장성봉 오름길은 길고 가파르다. 숨을 고르며 잠시 오르니 오른쪽으로 일출의 붉은 여명이 밝아 온다.

장송봉 오름길에 일출

좌측으로 병풍바위 암벽이 보이고 조금 더 진행하니 대형 용머리바위도 나타난다. 뒤쪽으로는 지난번 대간길인 대야산이 말없이 나를 내려 보고 있는듯하다. 버리기미재를 사이에 두고 대야산을 마주 보며 다시 솟아오른 산이 장성봉이다. 장성봉 오름길은 암릉과 명품송이 조화를 이루면서 정말 멋진 풍광을 선사한다. 버리기미재에서 한 시간여의 산행 끝에 장성봉(916.3m) 정상에 오른다.
장성봉정상에서 2시간여의 긴 오르내림 끝에 막장봉 갈림길이 나타난다. 앞서가던 우리 대원 두 명이 배낭을 내려놓고 쉬고 있다. 막장봉은 대간 길에서 잠시 벗어나 있어 다른 대원들은 막장봉을 다녀온단다. 막장봉 갈림길에서 잠시 휴식하는 사이 막장봉을 다녀오는 대원들이 얼굴 볼 사이도 없이 휑하니 바람처럼 우리 앞을 지나친다.
오늘 대간 길은 대간19구간의 문장대 비탐구간을 함께 해주신 종복님이 희양산까지 함께해 주셨다. 걸음이 느린 나를 기다려 주시면서 밧줄구간이 나타나면 밧줄을 잡아 주시기도 하고 안전한 길을 가르쳐 주시기도 하셨다. 산행 내내 감사하고 미안했다.

장성봉에서 세 시간여 만에 악희봉 갈림길에 다다른다. 악희봉도 대간 길에서 벗어나 있어 오늘의 힘든 대간길을 생각하여 그냥 지나친다. 악휘봉에서 바라보는 선바위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한 폭의 그림 같다지만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다.

악휘봉의 선바위

조망바위에서 악휘봉을 다녀오신 우리 대간 팀을 만난다. 막장봉과 악휘봉을 지나쳐온 덕분에 앞서가던 우리 선두 팀과 합류할 수 있었다. 선두팀은 경묵님, 영숙님, 숙경님, 준형님, 용숙님, 총무님, 용표님이다. 이분들은 우리 7기 북진종주 팀의 또 하나의 드림팀이다. 대간을 시작할 때 마다 저 드림팀에 합류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오늘에야 합류할 수 있었다.

드림팀이 찍은 사진

드림팀에 합류하였기 때문에 멋진 사진도 남길 수 있었다. 악휘봉 갈림길에서 크게 우측으로 꺾으니 암릉길이 나타나고 조금 내려서니 큰 암반 구간이 나타난다. 앞서가던 대원이 아이젠을 벗는다. 암반 길에 미끄러 질까봐 아이젠을 벗는 것이 안전할 것이란다. 미끄러워 보이지만 다행히 미끄럽지 않다. 앞쪽으로는 우뚝 솟은 주치봉과 구왕봉, 희양산이 조망된다.

여름의 해는 길었다. 아이들은 산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작은 못에서 수영을 하기도 하고 개구리를 잡아먹기도 했다. 참개구리는 도랑에 지천으로 있었다. 잡은 개구리는 긴 줄에 꿰어졌다. 아가미의 밑에서 위로 줄을 넣으면 개구가 줄에 꿰어진다. 이렇게 잡은 개구리는 형들이 창자를 잘라내고 껍질을 벗겼다. 빨간 속살을 드러낸 개구리는 쇠꼬챙이나 나무에 꽂아 불 위에서 빙빙 돌려 익히면 기름이 자르르 흐르며 익는다. 아이들은 둘러앉아 자기 차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면 형들은 꼬챙이에 꿰어진 개구리를 한 마리씩 꼬챙이에서 빼내어 줬다. 고소하고 꼬들꼬들하게 씹히는 개구리의 뼈와 고기의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형들은 뒷동산에 조그만 운동장 까지 만들었다. 잔디 씨앗을 채취해 와서 운동장에 잔디를 심기도 했다. 작은 둘레의 운동장이지만 형들은 소를 산에 올려놓고 아이들에게 릴레이 연습을 시키거나 달리기 시합을 시켰다. 이 운동장은 내가 군에 갈 때까지도 운동장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형들이라 해봤자 서너 살 위의 형들이다. 그 위에 큰형들도 있었는데 내가 국민학교 1학년 때 큰 형들은 5, 6학년이었다.
큰형들은 학교에 가는 아이들을 모아서 줄을 세우고 선생님 처럼 언제나 구령을 붙이면서 학교를 가게 했다. 형들이 하나, 둘하면 아이들은 셋, 넷 하면서 팔을 흔들면서 등교했다. 학교근처에 가면 버스가 다니는 도로가 나오는데 버스가 지나가면 손을 흔들도록 명령했다. 심술궂은 아이들은 감자주먹으로 욕을 퍼붓기도 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웅변을 하도록 했는데 동네에 웅변 전국대회에서 큰상을 받은 대학생 형님의 영향을 받으신 것 같다. 지금은 서울미술고 이사장 이신 그 형님은 나보다 열 몇 살 위인데 나에게 많은 영향을 줬다. 대학생 때 이미 웅변 책(수도웅변)을 출판할 정도로 웅변이 뛰어나신 분이었다.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우리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더구나 100여 호의 마을에 고등학생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그 형의 아버지에게 방학하면 나에게 웅변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셨던 것 같았다.
여름방학의 어느 날 그 형님은 자기가 쓴 책과 웅변 원고를 가지고 오셨다. 그 형은 원고를 외우도록 했다. 그리고 자기가 쓴 웅변책을 읽어 보라고 했다. 나는 웅변 원고를 열심히 외웠다. 원고는 반공을 내용으로 하는 것인데 우리 모두가 똘똘 뭉쳐서 괴뢰도당을 물리치자는 내용이었다. 원고는 길었으며 내용은 어려웠다. 소 먹이러 가서 틈틈이 웅변을 연습했다. 그 형님은 산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소리를 내라고 하였지만 내 목소리는 산은커녕 앞에 있는 소도 놀라지 않을 정도였다.
어느 구절에서 큰 목소리를 내고, 어느 시점에 손을 내리쳐야하는 지도 원고에 다 있었다. 호국 보훈의 달인 6월 어느 날 전교 웅변대회가 열렸다. 4, 5, 6 학년만 웅변대회에 나갈 수 있었는데 나는 4학년이었다. 드디어 교장선생님만 올라가시는 연단에 내가 섰다.

“친애하는 학우 여러분 지금 이 시간에도 호시탐탐 적화 통일을 노리고 있는 괴뢰도당을 물리치자고 이 연사 여기에 섰습니다.”
교단 앞에 앉아 똘망똘망한 눈으로 쳐다보는 전교생 앞에서 손은 올라가지 않았으며 주먹으로 교탁을 쳐야하는 곳에서 주먹은 쥐어지지도 않았다. 굳은 몸은 더 이상 손을 들지도 내려치지도 못했다. 나는 원고만 빠르게 외우고 교단을 내려왔다.
국민학교 4학년 때인 것 같다. 마을 4H에서 마을 연극을 개최했다. 연극 가설무대는 물이 없는 강가의 강자갈 마당에 새워졌다. 천막이 세워지고 무대가 만들어 졌다. 마을 청년들은 몇 달 전 부터 연극 준비를 했다. 단막극마다 역할을 배분하고 대사를 외웠다. 추석전날 드디어 연극이 열렸는데 마을사람들 모두가 구경 왔다. 나는 개막 인사와 폐막 인사를 하였는데 여자 분장을 하고 나왔다. 한복은 마을의 여자아이의 한복을 빌려와서 입었다. 누나들은 여장한 나에게 짙은 화장을 해주었으며 립스틱도 해주었다. 누나들은 여자아이의 분장을 한 나를 보고 낄낄대며 웃었으며 매우 만족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만 해도 연극에 여자아이가 출연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개막 인사는 농사일에 바쁘신 데도 불구하고 진자리마른자리 마다하지 않고 찾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두 손을 앞에 모으고 또박또박 개막 인사를 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자가 누고" 하고 웅성대었다. 그리고 큰 박수 소리를 들었다. 폐막인사는 대사가 뚜렷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마 어두운 밤길을 조심해서 잘 가시라는 내용 이었던 것 같다. 개막 인사가 끝나자 마을 사람들은 만족한 표정으로 뿔뿔이 흩어 졌다. 내가 마을 연극에 출연한데는 큰누나의 입김이 컸던 것 같았다. 큰누나는 동네 4H 대원이었으며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가파르게 해발 고도를 낮춰 첫번째 탈출로인 은티재에 도착한다. 은티재에서 은티마을과 주치봉 이정표가 나타나고 서낭당이 보인다.

은티재 서낭당

서낭당에는 정성스레 차린 떡과 대추, 밤이 차려져 있다. 대추를 집어 뜯어보니 비를 맞아 물컹하다. 대추를 제자리에 놓고 잠시 안전 산행을 빌어본다. 여기서 주치봉과 구왕봉, 희양산까지 세 번의 오르내림이 시작된다. 선두팀은 대간길로 흔적이 없이 사라지고 준복님이 나를 기다린다. 준복님과 함께 주치봉을 오른다. 부드러운 흙길이지만 가파른 경사가 조금도 꺾이지 않고 꼿꼿하게 버티고 있다. 숨을 몰아쉬기도 하고, 잠시 휴식을 취해보지만 주치봉 정상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허벅지에 쥐가 내리기 시작한다. 40여분의 힘겨루기 끝에 주치봉 정상에 닿으니 앞서가던 대원이 점심을 먹고 일어선다.

힘겹게 오른 주치봉 정상

준복님과 함께 점심을 먹고 주치봉 북사면의 내리막을 내려선다. 급한 내리막길을 내려선 후 다시 구왕봉 오름길이 시작된다. 구왕봉에 도착하니 앞서가던 대원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나도 얼른 끼어들어 사진을 남긴다. 구왕봉에서 대원들에게 다리에 쥐가 나서 주치봉 오르기가 힘들었다고 했더니 총무님이 근육 이완제라며 약을 주신다. 얼른 물과 함께 한 스틱을 먹는다. 구왕봉 정상에서 조금 내려서면 희양산 전망대가 마당바위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바위와 어우러진 소나무는 천하제일의 경치다. 구왕봉은 희양산을 조망하기 위해서 태어난 산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구왕봉에서 바라보는 희양산의 조망은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절경이다. 지름티재 협곡너머로 희양산의 암봉은 거대하고 웅장하여 나를 협박하는듯하다. 오른쪽 협곡사이에 봉암사가 내려다보인다.

구왕봉에서 바라본 희양산

구왕봉에서 희양산으로 가려면 안부(鞍部:산마루가 말안장 처럼 움푹 들어간 부분)인 지름티재로 한참 내려가야 한다. 고도를 350m을 낮추어야 하는 급경사구간이다. 다시 급경사 바윗길을 내려서면 괴산 연풍과 문경 봉암사를 연결하는 지름티재가 나오는데 지름티재는 오랫동안 봉암사 스님들이 출입을 막아 등산객들의 원성이 자자했던 곳이다.

봉암사 출입 감시 초소

두번째 탈출로인 지름티재에 도착하니 앞서가던 준복님이 기다린다. 은티마을로 바로 하산하자고 하신다. 대간 중에 이런 때가 가장 난처하다. 체력과 시간을 고려하여 중간 탈출로를 따라 하산할 것인지 아니면 계획된 대로 산행을 해야 할 것인지를 결정하기란 쉽지 않다. 대간길의 안전 산행을 책임지고 있는 문대장은 대간꾼의 아쉬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걸음이 늦은 나에게 무언의 지시를 내리고 있는듯하다. 험난한 암벽을 타고 오르면서 온몸으로 느끼는 짜릿함과 정상에 서서 발끝아래 내려다보이는 풍경을 바라보며 느끼는 세상을 모두 얻은 듯한 성취감은 그곳을 올라본 산꾼들만 안다. 나는 오늘 02시에 기상하여 이곳 희양산까지 왔는데 희양산을 포기 할 수 없다며 준복님에게 같이 가자고 한다. 준복님은 아직 나보다 힘이 더 남아 있는 것 같다. 지름티재의 해발고도가 705m이고 희양산정상은 해발고도가 998m이니 약300m의 해발고도를 높여야한다. 아까 먹은 근육이완제가 효과가 있는지 한결 다리가 편하다. 총무님의 배려에 감사하다.
지름티재에서 15분 정도의 완만한 오름길이 이어지다가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소나무와 거대한 바위 아래를 지나면 암벽을 타고 오르는 급경사 구간이다. 여기서 200-300m 구간은 로프가 없으면 올라갈 수 없는 험난한 구간이다. 마지막 70-80m구간은 70도 이상의 경사가 벼랑처럼 이어진다. 로프가 있으나 위험하다. 긴 암벽구간과 높은 경사도가 나를 압도한다.

아찔한 로프구간


만약 로프를 놓치기라도 하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우리는 암벽 등반에 필요한 안전 장비를 구비하고 있지 않다. 로프를 잡고 있어도 로프가 좌우로 흔들리면 우리 몸은 바위에 처참히 부셔져 버릴 것이다. 로프구간에서 앞서가던 대원들이 로프잡고 오르고 있다. 경묵님이 뒤따르는 대원들을 하나둘 리드해 가면서 안전 산행을 돕고 있다. 우리 대간 팀의 진정한 셰르파이다. 로프 한 개를 잡고 오르고 난 후 안전 구역에서 기다리다가 앞선 대원이 로프를 완전히 벗어나면 그 로프를 잡고 올라야한다. 경묵님은 안전산행을 위해서 대원들에게 안전한 자세와 로프를 잡는 기술을 전해주시며 다음 로프로 옮겨 갔다. 발을 디딜 곳과 손으로 잡을 곳을 일러주면 한결 편하고 안전하게 오를 수 있다. 백두대간 북진7기 세르파이신 경묵님의 도움 없이는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할 희양산 68m의 직벽구간을 오를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10여개의 로프를 오르면서 팔과 다리는 힘이 빠져 너덜거리는 신세가 된다. 능선 삼거리에서 희양산까지 이르는 0.4km 구간은 구왕봉과 주변 산들이 바라보이는 암릉구간이다. 구왕봉 뒤로 지난번 걸었던 대야산과 장성봉이 보이고 봉암사도 내려다보이는 완만한 암릉길이다. 어디서 헬기 소리가 들리더니 희양산 정상에서 멈추어 있다. 급경사 구간에서 로프가 흔들리면서 크게 다친 산객이 구조 헬기에 구조 되고 있다. 안전산행을 다시 한 번 다짐해 본다. 우리 산악회 회원 아니어서 불행 중 다행이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빠른 쾌유를 빌어본다.
희양산 정상의 암릉에는 소나무 군락과 멋들어진 낙랑장송도 있다. 낙랑장송은 토심이 깊고 기름진 땅은 굴참나무에게 내어주고 척박한 암반에 뿌리를 내리고 묵묵히 천하제일의 경치를 만들어 내고 있다. 암릉 아래는 끝이 보이지 않는 천 길 낭떠러지다. 암릉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로 현기증이 나지만 암릉위에서 바라보이는 조망은 가히 힘들게 오른 보람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희양산 정상의 고사목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오름인 희양산 정상에 선다. 바라보는 희양산은 산 전체가 하나의 바위처럼 보이는데 그 거대 암봉이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난다고 해서 햇빛희(曦) 볕양(陽)를 써서 희양산(曦陽山)이란다.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희양산의 감동을 뒤로하고 다음 구간의 접속구간인 희양산 성터 이정표에서 은티마을 하산한다.
계곡의 암릉 너덜 길을 힘겹게 내려서면 지름티재 갈림길 정자를 지나 편한 임도를 걸어 은티 마을에 도착한다.
희양산의 들머리 은티마을 동구에는 남근석이 세워져 있다. 은티마을은 여느 산골마을 처럼 계곡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그 형세가 마치 여성의 성기와 같은 여근곡이다. 여근의 여궁혈 (女宮血)자리에 남근석(男根石)이 세워져 있다. 은티마을의 음기를 누르기 위해서 남근석을 세우고 해마다 정원 초이틑날 동제를 올려 마을의 안녕을 빈다고 한다.

은티마을의 남근석



마을을 지나니 주차장에 우리 산악회전용 버스가 기다린다. 9시간의 대간길의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다음 구간도 드림팀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몸을 만들고 수도 정진해야겠다. 하산주를 하는 대원들과 함께 백두대간 21 구간 산행의 무용담을 서로 공감하며 서로 꽃이 된다. 만약 함께 하지 않았다면 서로 꽃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백두대간의 마지막 구간까지 벅찬 감동을 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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