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모르는병

실패한 새벽 벚꽃놀이

머투리 2009. 4. 5. 17:10
 

실패한 새벽 벚꽃놀이

   일요일 새벽 급히 아내를 깨웁니다. 경주에 벚꽃놀이 갔다 오자고 엊저녁에 약속했습니다. 오늘 한식일과 휴일이 겹쳐 고속도로가 막히면 어머니 점심식사가 늦을 것 같아서 새벽에 다른 사람들이 움직이기 전에 갔다와야합니다. 그러나 아내는 일어나지를 못합니다. 새벽잠을  즐기는 아내는 엊저녁 약속은 잊은 듯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머니 때문에 늘 시간에 얽매이는 아내가 안쓰러워 벚꽃 구경이라도 시켜줄려고 계획했던 것입니다. 일요일이면 혼자 훌쩍 떠나던 등산을 요즘 어머니를 병간호하는 아내에게 미안해서 쉽게 가지 못합니다.

   아내가 일어난 시간은 7시가 넘어서 입니다. 부지런히 머리를 굴려 봅니다만 점심때 오지 못할 것 같습니다. 8시가 넘어서야 아침을 먹습니다. 백양산에라도 아내를 데리고 가야할 것 같습니다. 우리 집 근처이이면서 벚꽃이 피면  어느 곳 못지않게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등산가방 메고 나서는 것조차도 어머니께 미안합니다.

  “어머니 산에 갔다 올게요” “그래 갔다오너라”

  정신이 옳찮은 어머니는 일하러 가는 줄 압니다. 산에는 벚꽃과 복사꽃이 만발했습니다. 아내를 위해 가는 등산이라 천천히 보조를 맞추어 2시간 반 정도 등산을 하고 하산합니다.  아내는 우리끼리 등산 갔다 온 것이 미안한 생각에 어머니께 드리려고 찐빵을 쌌습니다.

  “어머니 다녀왔습니다. 이것 좀 들어 보세요”, “응 이게 뭐꼬” 맛나게 드시는걸 보고 미안한 마음이 조금은 위안이 됩니다.

   오랜만에 날씨가 좋아 바람이라도 쐬어드려야 되겠습니다. 급히 외출준비를 시킵니다. 어머니를 모시고 우리아파트 앞에 있는 개금여중에 갑니다. 운동장에는 그럭저럭 봄을 느낄 수 있는 벚나무가 꽃을 뒤집어쓰고 우릴 반겨줍니다. 어머니를 부축하여 운동장을 걷습니다.

  봄 날씨에 어머니를 이렇게 모시고 걸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병이 더 깊어지면 이것도 힘들어 질 겁니다. 부축하기도 하고, 혼자 걸으시게 하기도 하고, 쉬기도 하면서 따뜻한 봄을 느끼게 합니다. 30분 정도 걸으시고는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합니다. 집에 모시고 왔더니 마음이 흡족하신 어머니는 통닭 시켜 먹자고 꼬깃꼬깃 돈을 내 밉니다. 이것저것 핑계로 이렇게 해 드리지 못하는 것이 미안합니다. 그래도 하루를 유익하게 보낸 것 같아 행복합니다. 

  이렇게 치매를 앓고 계시는 어른을 모시는 가운데도 행복은 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