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도전

무척산, 봉화산

머투리 2011. 11. 11. 13:10

 

    수능 예비소집일이라 고3아이들 환영행사하고 김해 무척산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고3아이들 출정식(환영행사)을 바라보면서 매년 해오던 것이지만 해마다 올 고3아이들이 작년에 비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아무쪼록  내가 가르친 아이들이 수능시험을 잘 치루기를 바라는 것은 이기주의일까? 전국의 수험생이 자기 실력을 최대한 발휘하기를 바라면서 김해 생림면 모은암 입구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 계획은 모은암-천지기도원-무척산 정상 원점 회귀하여 노무현대통령생가가 있는 봉화산에 올랐다가 추모공원을 둘러볼 계획이다.

     2000년 전 허황후와 관련이 있는 모은암을 오르니 강아지 한 마리가 절 입구 까지 내려와 손님을 맞는다. 불교신자가 아닌 이상 절에 시주할일도 기도할일도 없건만 구경삼아 들러 사진 몇 장 찍기 위함이다. 절이 좁아 사진기에 다 들어오지 않아 절 마당에 있는 바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으려니 “거긴 올라가면 안돼요“ 여자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바위에서 내려와 절을 급히 나온다. 환영받지 못할 것을 뻔히 알고 있었건만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바위가 어머니 바위란다. 그럼 안내팻말이라도 있으면 올라가지 않았을 것을...

모은암의 강아지 절입구까지 마중나왔다.

    바위 암봉을 돌고 돌아 연리지 소나무를 지나고 천지못 아래 폭포를 지나 천지에 도착한다. 천지는 김수로왕이 붕어한 뒤에 지금의 왕릉자리에 묏자리를 파는데 물이 자꾸 나와 지금의 천지 자리에 못을 파서 그 물길을 막았다고 하는 전설이 있으나 산위에 무슨 목적으로 저수지를 만들었는지 여전히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이유야 어쨌든 높은 산 한가운데 저수지가 있어 신비로움을 더한다. 


무척산 천지 이곳에 저수지를 만든것은 무엇때문일까?

 못 오른쪽으로 나 있는 등산로를 따라 계속 오르니 무척산 정상에 다다른다. 정상석은 무척산 신선봉이라 쓰여 있다. 전에는 무척산이라고 조그만 정상석이 있었는데 그건 한쪽에 놓여있고 사진과 같은 정상석이 위용스럽게 놓여있다. 그럼 무척산에는 이 신선봉을 비롯하여 여러 개의 봉이 있어야 그 이름에 걸맞을 것이나 그 이유를 모르겠다.

무척산 정상석


   정상에 서니 낙동강 너머 부산의 금정산과 백양산이 희뿌연 운무에 가려 희미하게 보인다.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천지못, 모은암 갈림길을 돌아 주차장까지 두 시간 삼십분 걸려 무척산 산행을 마친다.

   이제 노무현대통령이 영면하고 계시는 봉하마을로 향한다. 마을 입구는 노란색 바람개비가 방문하는 손님을 맞을 생각은 안하고 분주하게 돌아간다.

  마을에는 찾아오는 손님과 마을사람들의 거친 인사 말, 마을의 작은 집들에 비해 대나무 숲속의 희미하게 보이는 육중한 사저, 무언가 말하고 싶은 참배객과 묘지를 지키고 있는 경찰들 서로가 어울리지 않고 괴리된 듯한 분위기이다.  마을 입구의 노란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것처럼 낯선 분위기의 느낌을 받는다.

부엉이바위 저위에는 전경 두명이 출입금지시키고 있다. 

  그가 대통령을 하던 시절 그의 직설적 화법이 관료주의에 익숙해있는 국민들에게는 대통령의 권위를 걱정하게 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그를 인간적인 대통령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를 열광하고 추종하는 사람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그가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무엇일까? 거침없이 이야기 하고 토론하기를 좋아하던 그가 갑작스럽게 죽음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봉화산의 바위틈에 끼어있는 와불

  봉화산을 오르면서 바위틈에 끼어 누워있는 와불(원래부터 저런 상태로 조각했다는 설과 바로 서있는 석불이 넘어졌다는 설이 있음)과 봉화산 정상의 오른쪽 손에는 호미를 들고 왼쪽 손에는 호리병을 들고 있는 듯한 호미든 관음상등 여느 시골 마을과는 사뭇 다른 풍경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의 갑작스런 자살과 무슨 연관이라도 있는 듯 한 느낌을 받는다.

               묘지의 추모글이 새겨져있는 박석